중개업자들, 손님 끌려고 경매물건 '미끼'로

서울 가락동에 사는 최유선씨는 지난달 말 가락우성2차 부동산 중개업소 앞을 지나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올 6월만 해도 5억2000만원에 거래된 가락우성2차 전용 85㎡형이 3억3280만원에 나왔기 때문.궁금해진 최씨는 대체 어떤 매물이기에 이렇게 쌀 수 있느냐고 물어봤다. 그러나 중개사의 대답은 황당했다. 실제 매물은 아니고 다음 달 경매하는 물건의 최저 입찰가라는 얘기였다. 관심이 있다면 자신이 입찰대리로 나서 '입질'을 해볼 수 있다며 최씨를 유혹하기까지 했다.

18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경매시장에서 저가(低價)낙찰 사례가 잇따르자 부동산 중개업자들이 손님을 끌려고 경매물건을 '미끼'로 내거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다. 부동산 가격 상승기에는 동네 아줌마들이 매도호가를 올리려고 담합하더니 이제는 일부 중개업자들이 극심한 거래 부진을 핑계로 경매물건까지 동원해 호가를 낮추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강남 아파트 호가 왜 떨어지나 했더니…
강은 지지옥션 팀장은 "권리관계에 특별한 흠이 없는 경매물건도 세 차례씩 유찰돼 최저입찰가가 감정가의 51%까지 떨어지는 사례가 속출하자 중개업소들이 손님을 끌기 위해 경매물건을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개사들은 한편으론 매물을 내놓은 주인들에게 최근 경매 낙찰가를 알려주며 매도호가를 낮춰야 팔린다고 설득한다. 서울 대치동 씨티로드공인의 이현일 중개사는 "매스컴에 낙찰가가 한번 소개되기라도 하면 매수 문의자들이 낙찰가와 같은 가격대 매물 없느냐고 먼저 얘기를 꺼낸다"며 "호가를 낮춰야 손님이 올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경매시장 참여가 대중화하고 경매정보도 쉽게 구할 수 있게 되면서 경매 저가낙찰 사례는 집값 하락을 이끄는 또 하나의 도화선이 되고 있다. 지난달 6일 서울 대치동 미도아파트 107㎡형이 8억3510만원에 낙찰될 당시,이 아파트의 매도호가는 9억~9억5000만원 선이었다. 파격적인 낙찰가였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도아파트 가격은 더 떨어져 현재 호가는 8억5000만원대,실제 거래가 되려면 8억원대 초반은 줘야 한다고 인근 중개사들은 입을 모은다.

강 팀장은 "일반 매매시장에서 거래가 안되다 보니 경매 낙찰가를 매매 기준가격으로 삼는 분위기"라며 "경매시장은 다수가 참여해 객관적으로 가격이 매겨진다는 점에서 사람들이 신뢰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한편으론 떨어진 집값이 다시 경매 낙찰가를 끌어내리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서울 둔촌동 신성공인의 김동오 중개사는 "지난 1일 둔촌주공 4단지 전용 100㎡(31평)형이 6억3555만원에 낙찰됐다"며 "이후 집값이 하락세를 보여 내년 1월 경매에 나올 같은 단지의 같은 주택형 낙찰가도 약세를 면치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