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조화의 물결 속에서/ 기뻐하지도 두려워하지도 말게나. / 끝내야 할 곳에서 끝내버리고/ 다시는 혼자 깊이 생각 마시게.'

도연명의 시 '신석'(神釋)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중국 인문학계의 거두 지셴린(季羨林)은 산문집 <다 지나간다>(추수밭 펴냄)에서 이 시를 인용하며 묵묵히 삶을 가꾸는 지혜와 세상과 소통하는 법,학문과 일에 대한 마음가짐,아름답게 나이 드는 법을 조곤조곤 일러줍니다.

올해 98세인 그는 '13억 중국인의 정신적 스승'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100년 가까이 체득한 인생의 덕목들을 담백하게 펼쳐 놓습니다. 불안정한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순간의 고통과 기쁨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혼자라는 외로움에서 벗어나 따뜻하고 평온한 일상을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게 핵심 메시지입니다.

그렇지요. 아무리 어려운 상황도 '다 지나가게 마련'입니다. 비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속이 꽉 찬 그의 문장은 그래서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인생 백 년 사는 동안/ 하루하루가 작은 문제들의 연속이었네./ 제일 좋은 방법은 내버려두는 것./ 그저 가을바람 불어 귓가를 스칠 때까지 기다리세.'

또 한 사람.철학교수직을 버리고 전북 부안으로 낙향해 농사를 지으며 변산교육공동체를 설립한 윤구병씨는 신작 에세이 <가난하지만 행복하게>(휴머니스트)에서 우리 삶의 뿌리를 깊숙하게 건드립니다. 그는 대장간에 와서 호미와 괭이 같은 연장을 벼려 달라는 사람들과 창과 검을 벼려 달라는 사람들의 차이를 들며 농사짓는 연장과 사람을 해치는 무기의 본성을 되비춥니다. 그러면서 땅을 되살리고 우리의 인간성을 되살리고 모두가 공동의 울타리가 되어 희망의 집을 짓자고 권합니다.

경기불황으로 마음까지 오그라드는 연말이지만,가슴 따뜻한 희망 에세이를 읽으며 기운을 차려야겠습니다. 우리가 잊고 지내거나 소홀히 했던 대상 중에 얼마나 소중하고 빛나는 것들이 많던가요. 코흘리개 시절부터 50년간 이어온 우정을 감동적으로 담아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밥 그린의 <친구에게 가는 길>(푸른숲)도 함께 권합니다.

문화부 차장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