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대 전력회사인 도쿄전력은 최근 배선관련 기자재를 조달하고 있는 국내 A사에 제품 가격을 20% 인하해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엔화 강세로 환차익을 보는 만큼 가격을 낮춰달라는 요구지만 A사는 원화 약세에 따른 원재료 수입가격 상승을 이유로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후시미 도쿄전력 국제조달그룹장은 "원재료 구입 시기 등을 면밀히 따져본 결과 재료비 상승 이상의 환차익을 챙기고 있다"며 줄기차게 가격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엔화 강세로 대(對)일 수출에 따른 반사이익을 기대했던 국내 기업들이 제품가격 인하를 요구하는 일본 수입업체들의 역공에 시달리고 있다. 연초 100엔당 800원대였던 환율이 1500원을 오르내리는 엔화 강세가 상당기간 지속되자 가격을 깎아달라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는 것.

KOTRA는 18일 일본 대기업 39개사 구매 담당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15개사가 '한국제품의 가격을 올 초보다 낮춰 수입하고 있다'는 답을 내놨다고 발표했다. 나머지 24개사도 '엔화강세가 지속된다면 제품가격 인하를 요구할 것'이라고 답해 국내 기업들의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엔고(高)현상이 지속돼 한국제품 수입가격이 하락하면 한국 제품에 대한 수입을 늘릴 것인가'는 질문에 21개사가 '그렇다'고 응답했지만 18개사는 '오히려 수입을 줄일 수도 있다'고 밝혔다. 엔고현상 지속이 국내 기업들에 마냥 유리하지만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수입확대 의사가 없는 기업들은 그 이유로 일본 내수시장 위축과 엔고에 따른 수출 경쟁력 약화를 들었다.

일본으로 생산제품을 수출하고 있는 B사 관계자는 "원화가 강세가 되면 제품 가격을 그만큼 올려받기가 쉽지 않다"며 "오랫동안 거래관계를 이어온 일부 기업들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해 환율변동에 따라 제품가격 조정이 가능하지만 대부분 기업들은 그렇지 못하다"고 말했다.

유럽지역에 기계부품을 수출하는 C사 관계자는 "환율 변동에 따른 일시적인 환차익을 나눠갖자는 건 무리한 요구"라며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 달러와 유로화도 강세인데 이들 지역의 바이어들도 똑같은 요구를 해올까 두렵다"고 우려했다.

기세명 KOTRA 아ㆍ대양주팀장은 "내수와 수출이 모두 부진한 일본 기업들이 '엔고 환원 세일(엔고로 이득 보는 부분을 가격인하로 소비자에게 환원)' 등으로 수입품 판매가격을 낮춰 판매를 늘리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합리적인 선에서 일본 기업의 가격 인하 요구를 들어주더라도 환율 변동에 따른 금액 책정 계약을 요구하는 등 환율하락에 대해서도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동민 기자 gmkd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