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외교통상통일위원회 회의실이 있는 국회 본청 4층 복도 일대가 갑자기 뿌옇게 변했다.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상정이 예정된 전체회의 개의를 20여분 남겨두고 민주당 의원들과 보좌진의 회의장 진입시도가 거세지자 안에 있던 한나라당 의원들이 소화기 분사로 대응한 것이다. 하얀 소화 분말을 뒤집어쓰고 주춤하던 민주당 관계자들은 곧 소방호수를 끌어와 안쪽으로 '물대포'를 쐈다. 촛불시위대와 경찰이 대치하던 지난 봄의 광화문 대로변 일대를 연상시켰다.

사실 위치만 광화문에서 국회로 옮겨졌을 뿐 무정부상태라는 점에는 차이가 없다. 국회에는 벌써 3주째 고성이 난무하고 몸싸움이 밥 먹듯 벌어지고 있다. 감세법안이 상정됐던 지난 5일 기획재정위 조세소위를 시작으로 13일 예산안 처리와 이날 FTA 비준동의안 상정까지 협상과 타협보다는 힘으로 밀어붙이는 다수여당과 악다구니 쓰는 야당 사이에서 모든 현안이 처리됐다. 임시국회는 4일째 대부분의 의사일정이 모두 중단된 가운데 이날 행정안전위에서는 민주당 의원이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물컵과 물병을 던졌다. 소화기,물대포에 집기를 쌓아올린 바리케이드,쇠망치,정 등 갖은 소품이 동원된 이날의 '공성전'은 끝간 데 없는 여야 대치의 절정이었던 셈이다.

문제는 이 같은 상황이 좀처럼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여야가 서로를 향해 전속력으로 내달리는 가운데 브레이크를 밟으려는 어떤 시도도 보이지 않는다. 최전선에 선 의원들은 핏대를 올리며 고함을 지르는데 여야 지도부는 계속 돌격 앞으로만 외치고 있다. 원혜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반나절 동안 외통위 회의장 주변을 지키며 진두지휘를 했으며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도 "정부가 요구하는 모든 법안을 처리하겠다"고 전의를 불태웠다.

이런 상황에서 김형오 국회의장은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며 의장실에 틀어박혀 중재에 나서지 않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속도전'을 내걸고 한나라당 지도부의 등을 계속 떠밀고 있다. 쇠망치에 국회 회의장 문이 부서지고 의원과 보좌진이 욕설을 주고받는 아수라장이 얼마나 계속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나라가 대공황 이후 최악이라는 세계경제 위기에 내몰린 상황의 정치권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