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13년 5개월만에 최고 … 일본, 시장개입 강력 시사

글로벌 금융위기 와중에 강세를 보여왔던 미국 달러화 가치가 급속히 약세로 돌아서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기준금리를 제로(0~0.25%) 수준으로 낮춘 게 달러화 약세의 불을 댕겼다. 금융위기 수습과정에서 미국의 재정적자가 천문학적으로 불어나고 있는 것도 약달러의 한 요인이 되고 있다.

17일 뉴욕 외환시장에서 달러화 가치는 엔화에 대해 달러당 87.67엔으로 추락했다. 전날보다 1.10엔 떨어진 것이다. 달러화 가치는 한때 87.13엔까지 급락해 1995년 7월 이후 13년5개월 만의 최저 수준을 보였다. 유로화에 대해서도 유로당 1.4438달러에 거래돼 전날보다 0.0310달러 하락했다. 9월 말 이후 최저 수준이다. 18일에도 도쿄 외환시장에서 한때 달러당 87.10엔 선까지 떨어졌으나 일본 외환당국이 강력한 개입 의지를 피력하면서 87엔 후반 선에서 등락을 거듭했다. 이날 달러화 가치는 중국 위안화에 대해서도 달러당 6.8322위안을 기록,1개월 래 최저 수준으로 밀렸다. 달러화는 호주달러에 대해서도 2개월 만의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FRB가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인 제로 수준으로 낮춤에 따라 다른 나라와의 금리격차가 커지면서 달러화 투자매력이 줄었다. 또 2009회계연도(2008년 10월~2009년 9월)에 재정적자 규모가 1조5000억달러에 달할 것이란 전망도 달러 약세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에 따라 헤지펀드 등 일부 기관투자가들은 달러가치 하락에 따른 손실을 줄이기 위해 달러 매도에 가세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브라이언 돌란 포렉스닷컴 수석통화전략가는 "패닉에 가까울 정도의 달러 대탈출 현상과 비슷하다"며 "FRB의 통화 완화기조로 새로 찍어낸 달러가 시장을 덮칠 것이란 우려를 반영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처럼 달러가 약세를 보이고 엔화가치는 뛰면서 일본 정부는 기준금리 인하와 외환시장 개입 등을 검토 중이다. 시장에선 일본은행이 19일 기준금리를 현행 연 0.3%에서 0.1%로 낮출 것으로 보고 있다. 가와무라 다케오 관방장관은 이날 "필요할 경우 외환시장 개입을 포함해 적절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은 2004년 3월 이후 외환시장에 개입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뉴욕=이익원/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