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빅3' 자동차업체 중 포드를 제외한 제너럴모터스(GM)와 크라이슬러가 한국의 워크아웃과 유사한 회생절차를 밟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미 정부는 공화당의 반대로 '빅3'에 대한 구제금융 지원이 무산되자 사정이 급한 GM과 크라이슬러를 워크아웃과 비슷한 '합의파산(prepackaged bankruptcy)'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18일 미국기업연구소(AEI) 연설을 통해 "'빅3'의 무질서한(disorderly) 파산이 우려된다"면서 "무질서한 파산은 그렇지 않아도 경기침체로 휘청이는 미국 경제에 충격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실패한 기업은 실패하도록 놔둬야 하지만 지금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어서 주요 기업이 무너지면 국민까지 상처를 입을 수 있다"며 "차기 오바마 정부에 재앙을 물려주고 싶지 않은 의무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데이너 페리노 백악관 대변인은 "업계가 연착륙하도록 기회를 주는 질서 있는(orderly) 파산을 구제방안의 한 단계로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빚 잔치를 하는 청산 대신 파산을 통한 회생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일단 미 정부가 극심한 자금난에 처한 GM과 크라이슬러에 몇 개월간 구제금융을 지원하되 '합의파산' 절차를 밟게 할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했다. 구제금융 규모로는 미 의회에서 논의되던 140억달러 안팎을 언급했다.

'합의파산'이란 미 연방파산법에 따라 연방법원에 파산보호신청(챕터11)을 하기 전에 채권단 경영진 노조 납품업체 등 이해관계자들이 각각의 회생안을 내놓아 회생 방안에 합의한 뒤 파산에 들어가 회생 기간을 최대한 앞당기는 것을 말한다. 특히 채권단과 회사가 미리 부채 경감 등 채권♥채무관계를 재조정하기 때문에 통상적인 파산절차가 2~5년 걸리는 데 비해 합의파산은 1년 내로 마무리된다.

합의파산하는 회사는 파산 기간 중 금융권에서 신규로 갱생자금(DIP금융♥debtor-in-possession)을 지원받는다. DIP금융을 제공하는 금융권은 기존 채권보다 우선적으로 변제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페리노 대변인이 "이해관계자들의 과감한 결정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한 것은 이런 합의파산의 장점을 활용하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과거 TWA항공이 두 차례 합의파산을 거쳐 아메리칸에어라인(AA)에 흡수 합병된 적이 있다.

이처럼 백악관 측이 합의파산 카드를 꺼낸 것은 빅3를 압박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현재 공화당 의원들은 자동차 구제금융법안을 통과시켜 주는 전제조건으로 미자동차노조(UAW)가 임금을 미국 내 일본 자동차업체 수준으로 낮추는 데 동의하는 등 자구방안 마련을 내걸고 있다.

미 정부의 합의파산은 오바마 차기 정부와 해당 업체 등의 반발이 적지 않아 현실화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GM과 크라이슬러는 최근 파산전문 변호사까지 각각 고용했으나 파산신청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한편 내년 세계 자동차 시장은 올해보다 더 나빠질 것이란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혼다 회장인 아오키 사토시 일본자동차제조업협회(JAMA) 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자동차 시장이 내년에도 계속 악화될 것"이라며 "일본 자동차 판매는 내년에 31년 만에 최저인 500만대 미만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내년 미국의 신규 승용차 수요도 6% 줄어든 1250만대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했다. 골드만삭스는 내년 세계 자동차 판매 신장률을 당초 예상했던 9%에서 7%로 낮췄다. 이처럼 자동차 시장이 위축되면서 세계 1위인 도요타자동차는 올해 사상 첫 영업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최인한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