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기침체ㆍ살인적 엔고 여파
자동차ㆍ 철강 등 전업종으로 확산
해고된 비정규직 노숙자 전락 우려

지난 19일 오후 도쿄 고락쿠 도요타자동차 본사 건너편에 있는 '헬로워크(Hello work) 이다바시 센터'. 정부가 운영하는 무료 직업안내소인 이 센터 2층 구직알선 창구는 100여명의 구직자들로 북새통이었다. 30개의 상담 창구는 물론이고 50여석인 PC 검색대도 빈자리 없이 꽉 차 있다. 반면 같은 건물 1층에 있는 구인알선 창구는 썰렁했다. 7개의 상담 창구가 열려 있지만 2개 창구에만 상담자가 있을 뿐이다.

가네다 도우루 산업고용조정관은 "지난 여름까지만 해도 구직자보다 구인자가 훨씬 많았지만 최근 2~3개월 새 완전히 역전됐다"며 "올 10월에는 신규 구직자가 3500명 정도였는데 11월에는 5000명을 넘었다"고 전했다.

일본이 '고용 빙하기'로 접어들었다. 자동차에서 시작된 감산과 감원이 전기ㆍ전자 철강 화학 등으로 확산되면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종신고용으로 상징되는 일본식 경영도 전대미문의 세계 동시 불황 앞에선 맥을 못 추고 있는 양상이다. 실업 증가는 소비 위축→생산 감소→감원 등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할 조짐이다. 세계적 판매 부진과 살인적 엔고에 더블 펀치를 맞고 있는 일본 경제는 지금 '10년 불황'의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고용 불안은 아이로니컬하게도 가장 잘나가던 도요타자동차에서 시작됐다. 지난 11월6일 올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70% 줄어들 것이란 충격적 전망을 내놓은 뒤 도요타는 대대적 감산과 고용 조정에 착수했다. 이어 혼다 닛산자동차도 뒤를 따랐다. 일본 자동차업계의 감산 대수는 190만대,감축 인원은 1만4000명을 넘는다. 자동차업계의 감산ㆍ감원은 부품 중소기업은 물론 자동차용 강판을 만드는 철강회사와 전기ㆍ전자 등 후방산업에도 도미노식으로 번졌다. 일본의 2,4위 철강업체인 JFE스틸과 고베제강은 7년 만에 고로(용광로)의 불을 껐다. 소니는 국내외에서 전체 직원 수의 10%에 해당하는 1만6000명을 감원하기로 했다.

최근 일본 기업의 고용 조정은 1990년대 10년 불황 때보다 더 심각하다. 당시에는 미국식 경영을 도입한 소니 등 일부 회사만 감원을 했다. 도요타 캐논 등 일본식 경영을 고수한 기업들은 종신고용제를 유지했다. 하지만 지금은 예외 없이 대부분의 일본 기업이 감원에 나섰다. 경영컨설턴트인 오마에 겐이치 박사는 "10년 불황 때는 일본을 빼고는 미국 유럽 등의 경기가 좋아 도요타 등 수출기업들은 감원을 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며 "그러나 지금은 세계 경제가 다 안 좋아 상황이 다르다"고 말했다.

게다가 더 문제는 일본 기업들의 감원이 비정규직에 집중되고 있는 점이다. 자동차업계 감원 인원의 100%가 비정규직이다. 상대적으로 저소득층인 이들은 퇴직금도 없어 일자리를 잃으면 빈곤층으로 몰락할 가능성이 크다.

"회사 아파트나 기숙사에 살던 비정규직들은 거리로 내몰려 노숙 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다. 재취업은 기대도 할 수 없어 장기 실업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비정규직의 실업 증가는 밑바닥 내수를 급속히 악화시킬 뿐 아니라 사회불안 요인이 된다. "(아베 마고토 커뮤니티 노조연합 사무국장) '잃어버린 10년'을 넘어 부활했던 일본 경제에 짙은 불황의 그림자가 다시 드리워지고 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