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팀에 뒤늦게 발동이 걸렸다. 이명박 대통령이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한 속도전을 강조하면서 채찍을 휘두르자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부터 스피드를 내고 있다. 발 벗고 나서지 않으면 내년 초 있을지 모를 개각에서 '경질 1순위'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장관들을 행동으로 내몰았다.

○…재정부는 산업ㆍ기업ㆍ수출입은행 등 3개 국책은행에 대한 현금 출자 시기를 당초 계획했던 내년 1월 말에서 1월2일로 앞당기기로 했다. 재정부 관계자는 "국책은행 출자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 및 수출기업에 대한 유동성 지원을 원활히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새해 첫 사업으로 정하게 됐다"며 "새해 첫 영업일인 1월2일에 출자대금을 완납해 증자 절차를 마무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정부는 1조7000억원에 달하는 출자금을 쓰고 남은 예산(불용액)과 연말 국세 수입액으로 충당한 뒤 부족하면 한국은행에서 빌린다는 방침이다.

서울 강남권 3구(강남ㆍ서초ㆍ송파구)에 대한 투기과열지구 해제 등 부동산 관련 규제 완화도 강 장관이 실무진의 소극적인 입장을 눌러가며 대폭 해제를 주장해 온 국토해양부의 손을 들어줬다.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은행권 자본확충펀드 20조원 조성' 계획도 선제적이면서 대담한 조치다. 시장에선 은행들의 자구 노력을 봐가면서 내년 초에나 발표할 것으로 예상했다. 전광우 위원장은 "이번 조치는 은행들이 자금난에 허덕이는 기업을 적극 지원하도록 하는 동시에 기업 부실이 은행 부실로 이어지는 것을 막아주는 범퍼 역할을 할 것"이라며 "비밀리에 준비해 온 작업을 조속히 마무리지었다"고 말했다. 규모도 파격적이다. 임승태 금융위 사무처장은 "은행들이 자본 확충을 도와달라며 손을 내밀 자금은 6조~7조원 정도일 것"이라며 "압도적으로 많은 자금을 조성해 시장 불안을 해소하는 '곱하기 2' 방식을 적용했다"고 밝혔다. 김종창 금융감독원장도 32명의 정예 요원으로 기업재무개선지원단을 만들더니 부원장 대신 직접 단장을 맡기로 했다.

○…자본확충펀드가 가능했던 것은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의 협조가 컸다. 자본확충펀드 20조원 중 10조원은 한은에서 나온다. 한은이 금융 비상사태에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전 위원장도 이 총재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한은의 자세 변화는 기업 자금난이 심화되는데도 한은이 발 벗고 나서지 않는다는 외부의 압력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이 총재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지난 11일 기준금리를 연 4%에서 3%로 1%포인트나 내렸다. 예상을 뛰어넘는 강수였다.

채권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5조원을 넣기로 하고 은행들이 맡겨놓은 지급준비금에 5000억원의 이자를 주기로 결정했는데도 한은이 더 공격적이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가면서 이 총재가 '빅 스텝'으로 응수하고 나선 것이다. 이 총재는 또 "금융 비상사태(심각한 통화신용 수축기)의 경계선에 와 있다"고 말해 기업어음(CP) 매입 등 발권력을 동원해 민간 부문에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음도 시사했다.

○…기업 구조조정이 어느 정도 속도를 낼지는 과제로 남아 있다. 금감원이 구조조정의 원칙을 '최대한 살리면서 옥석은 가린다'로 정해놓은 만큼 퇴출시킬 기업을 빨리 선정해야 시장의 불확실성이 해소되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고 있는 건설회사나 조선사 중 무작정 지원하기 어려운 기업을 솎아내는 작업의 속도에 구조조정의 성패가 달려 있다. 이에 따라 구조조정 관련 채권단의 이견을 조정하는 채권금융기관조정위원회 위원장을 조속히 선임하고 생사 가르기 작업을 신속히 해야 한다. 이와 관련,지식경제부도 채권단 주도로 이뤄질 구조조정에 산업 재편 차원에서 적극적인 의견 개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많다.

김인식/주용석/정재형/이태명/김현석 기자 sskis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