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자동차 본사와 주요 공장이 몰려 있는 나고야의 번화가 긴산(錦三).예년 같으면 회사원들의 송년회로 흥청거렸을 연말이지만 요즘 긴산의 밤거리에선 취객을 만나기가 어렵다. 고급 음식점과 술집 1600여개 업소가 모인 긴산의 경기는 '한겨울'이다. 결정적 이유는 도요타가 이달 초 하청 중소기업 등에 보낸 협조문 한 장."악화된 경영환경을 감안해서 송년회와 연말 선물 등을 자제해달라." 긴산의 한 요정 여주인은 "지난 7년간 도요타가 매년 사상 최대 이익을 낸 덕분에 긴산의 밤 경기는 도쿄 긴자 못지않았다"며 "그러나 이달 들어선 하루에 한두 팀의 손님도 받기 어렵다"고 한숨을 지었다.

올해 도요타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70% 줄어들 것이란 우울한 전망이 나온 지난 11월 초 이른바 '도요타 쇼크' 이후 일본의 연말 특수는 실종됐다. 도요타 등 주요 자동차회사들의 공장이 있는 아이치현 후쿠오카현 등 지방은 물론이고,도쿄 중심가도 썰렁하긴 마찬가지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송년회 풍속도의 변화다.

직장인들의 거리로 불리는 도쿄 신바시에서 요즘 인기 있는 송년회 장소는 이자카야(선술집) 겸용 가라오케다. 이자카야에서 1차로 술을 마시고 2차로 노래를 부르러 가라오케에 가는 게 일반적이지만,최근에는 1,2차를 동시에 할 수 있는 가게들이 유행이다. 송년회 비용을 아끼려는 직장인들의 수요에 부응한 새로운 업태가 생겨난 것이다.

경기에 비교적 둔감한 고급 소비시장에도 찬바람이 불고 있다. 최근 불황이 주가 폭락 등 금융위기와 겹친 바람에 금융 자산이 많은 50~60대 부유층의 타격이 커서다. 올 들어 백화점 매출이 격감하고 있는 게 단적인 예다. 전국 백화점의 지난달 매출은 작년 같은 달에 비해 6.4% 줄었다. 11월로는 15년 만에 가장 큰 하락폭이다. 특히 고가품인 미술품ㆍ귀금속 매출은 16%나 줄었다. 여성복도 10.3% 감소했다. 미쓰코시백화점 긴자점의 다케이 마모루 영업부장은 "고객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 백화점들이 연말 보너스 시즌에 맞춰 신사복과 여성복을 10~50% 정도 싼 가격에 판매하는 기획전을 경쟁적으로 열고 있다"며 "그러다보니 백화점 매출은 더욱 줄고 있다"고 말했다.


명품 시장도 예외가 아니다. 도쿄의 소비 1번지 긴자에 있는 샤넬 루이비통 페라가모 등 명품 매장들은 올 들어 매출이 10%가량씩 줄었다. 그 여파로 프랑스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은 긴자에 세계 최대 규모 매장을 추가로 신설하려던 계획을 최근 철회했다. 명품족들이 많기로 유명한 도쿄에서 루이비통이 매출을 걱정해 점포 신설을 접은 것은 '사건'이었다.

요즘 긴자 쇼핑가에서 그나마 손님이 붐비는 곳은 '명품 렌털 매장'이다. 미쓰코시백화점 뒤편에서 명품 렌털숍을 운영하는 나카야마 시바타 사장은 "연말 송년회나 파티에 들고 갈 명품 핸드백이나 목걸이 귀걸이 등을 하루 이틀 빌리는 여성들이 예년에 비해 30% 정도 늘었다"며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명품 대여 예약은 한 달 전에 이미 끝났다"고 귀띔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