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운 벗고 봉사활동 나선

"의사나 하지 뭐하는 짓이냐는 소리도 들었지만 밥을 굶는 아이들을 보니 나몰라라 할 수가 없네요. "

의사 가운을 벗어던지고 '결식아동 제로 운동본부'를 발족,사회봉사 활동에 나선 황기선 '탈모드' 대표원장(44)은 "결식아동을 누군가 돌보지 않으면 이들의 성격까지 병들게 될 것"이라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황 원장은 소위 잘나가는 의사다. 2004년 경기도 평촌에 국내 첫 두피모발 전문 클리닉 '탈모드'를 개원,2년 만에 병원 체인을 35개로 늘렸다. 피부관리 전문 '미젠드' 체인도 13개로 확장하면서 의사 겸 사업가로 승승장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머리인 그가 탈모를 치료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고객이 더 늘었다고 한다. 그런 그가 1년 전 갑자기 의사 가운을 벗어 던졌다.

황 원장의 삶을 바꿔놓은 것은 신문에 난 '공부방' 관련 작은 기사였다.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에 결식아동이 20%란 사실이 처음엔 믿겨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학교에 찾아가 확인 후 결식아동을 돕겠다는 공문을 돌렸는데,그렇게 많은 신청이 들어올 줄 상상도 못했습니다. " 그는 겨울철에도 슬리퍼를 끌고 다니는 아이들이 불량아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신발 살 돈이 없는 아이들이었다고 덧붙였다.

황 원장은 이때부터 결식아동을 줄여보기 위해 복지단체나 동료 의사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처음엔 도움을 주던 이들도 점점 피하는 눈치였다. 경제 불황에 기부금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마일리지 포인트 기부운동'이다. 카드나 휴대폰 사용자로부터 포인트를 기부받아 현금화한 후 결식 학생의 봉사활동 점수와 맞교환하는 방식이다.

"매년 사용하지 않는 포인트를 돈으로 환산하면 1조원이 넘을 것입니다. 소비자들이 이런 포인트를 모두 기부하면 우리나라의 밥을 굶는 아이들 전체를 배부르게 할 수 있습니다. " 황 원장의 이런 계획에는 신한카드가 가장 먼저 동참했다.

황 원장은 동료 의사들을 이 운동에 참여시키는 게 또 다른 목표다. 기부나 봉사활동을 펼치고 싶어도 방법을 모르는 이들에게 길을 터주고,병에 걸린 결식아동이나 그 가족들을 돌보기 위해서도 의사들의 도움이 절실해서다. "의사는 봉사 개념이 강한 직업이잖아요. 하지만 요즘 의사들이 이익만 추구하다 보니 이익단체로 비쳐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의사들도 성공하고 싶으면 봉사와 기부를 일상화해야 합니다. "

제약회사 마케팅 임원과 대표이사 등을 지낸 그는 창의적인 도전을 즐긴다. '탈모드'는 브랜드를 내걸고 시작한 탈모 전문 클리닉으로는 국내 첫 시도였다. '마일리지 포인트 기부운동'도 봉사활동의 새로운 모델이다. 황 원장은 이 모델로 특허를 출원 중이다. 국제적인 기부 모델로 키워 보겠다는 포부다. "우리 병원 네트워크가 대만에 진출해 있기 때문에 의사들을 교육시키면 아시아로 확대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또 세계적 카드사인 마스터나 비자 등과 손잡으면 세계 어린이들을 도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

의사 공부에 15년을 투자했고,전성기에 의사 가운을 벗고 봉사활동에 뛰어든 것은 황 원장 개인에게는 큰 손해다. 환자를 못보면서 의료 지식이 점점 메말라 간다는 것.그는 그러나 병을 낫게 하는 것보다 사회를 치료하는 게 더 큰 보람이라고 생각한다. 돈 버는 재미보다 봉사의 행복감이 더 큰 것도 위안이다.

"내년 말까지 우리나라에서 결식아동이란 말을 몰아낼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일리지 포인트가 쌓이는 업체는 모두 찾아다닐 생각입니다. " 열변을 토하던 황 원장은 만나야 할 사람들이 많다며 총총걸음으로 자리를 떴다.

글=최규술 기자/사진=김정환 인턴(한국외대 4학년) kyus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