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약 1만평 규모의 조경수 농장을 운영하는 촌로(村老) 이종철씨(68)가 얼마 전 기자에게 이메일을 보내 왔다. 그는 쓸모 없는 잡종 국유지(행정상 용도가 없는 토지)를 민간에 팔아서 서민생활 지원에 쓰겠다는 정부의 발표(12월18일 기획재정부 업무보고)를 결코 믿지 않는다고 했다.

2005년 '자투리 국유지를 민간에 매각한다'는 정부 발표를 듣고 남제주군청에 한 번, 지난 8월 '쓸모없는 맹지(사방이 다른 땅으로 막혀 도로에 접하지 않은 땅) 처분' 발표를 믿고 토지공사에 또 한 번.이렇게 두 번에 걸쳐 농장에 인접한 국유지 불하를 신청했으나 석연찮은 이유로 거절당했다는 것이다. 남제주군과 토지공사는 '소나무 군락지로서 보존 필요가 있다'는 사유를 들었다. 이씨는 "선친과 내가 관리하지 않았다면 소나무는 이미 말라 죽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말을 이용해 이씨의 농장을 찾아가봤다. 사방이 사유지로 막힌 이 국유지는 아무런 관리 없이 방치된 채 농장과 접해 있었는데 딱 보기에도 벌레가 들끓고 나무 덩쿨이 제멋대로 자라 소나무(100주가량)는 물론 근처 조경수에까지 폐를 끼치고 있는 상황이었다. 1999년에는 누군가 국유지에 들어 왔다가 실수로 불을 내서 조경수 농장을 통째로 태워 먹을 뻔한 일도 있었다고 했다. 이씨는 "우리 가족이 1986년부터 15년간 이 땅을 임대해 관리했다"며 "차라리 내가 맡아 돌볼 테니 불하해 달라고 해도 소용 없었다"고 말했다.

재정부는 현재 활용하기 어려워서 처분하는 게 나은 국유지가 37만필지라고 분석했다. 이를 적극적으로 민간에 이양한 뒤 매각 대금으로 쓸모 있는 땅을 사두는 게 정부 방침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위탁관리를 맡은 지자체나 토지공사 자산관리공사 등 현장에서는 행여 나중에 문제가 생길까 가급적 보존 위주로 일을 처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인지 2007년 한 해 동안 민간에 매각한 국유지는 1만7000여 필지(처분 대상 토지의 4.6%)에 불과했다.

다행히 이씨의 억울한 사정이 국민권익위원회에 접수돼 곧 원만한 해결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정부는 그동안 약속한 대로 쓸모 없는 국유지를 필요한 민간인에게 적극적으로 넘겨서 토지 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길 기대한다.

제주=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