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2일 당초 예상과 달리 '3대 부동산 규제' 완화를 유보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신중한 검토'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국토해양부와 기획재정부가 부동산시장 경착륙을 막기 위해 부동산 규제를 대폭 해제하겠다고 밝힌 지 며칠 만에 방향을 급선회하자 부동산시장은 혼란에 빠졌다. 정부 관계자는 "3대 부동산 규제 완화를 전면 백지화하는 것이 아니며 좀 더 시장 상황을 지켜보자는 의미"라며 긴급 진화에 나섰으나 정책 신뢰성에 큰 흠집을 남겼다.

◆정치 역풍에 밀린 규제 완화

정부는 이날 △민간택지 주택 분양가 상한제 폐지 △서울 강남 3구(강남ㆍ서초ㆍ송파구) 투기지역 및 투기과열지구 해제 △미분양 주택 매입시 양도소득세 한시적 면제 등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시장의 예상을 깨고 부동산 3대 규제완화가 보류됐다. 이는 투기 수요를 끌어들여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경우 더 큰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점을 고려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부동산 3대 규제 완화는 국토부에서 부동산 시장 정상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재정부에 요구해온 핵심 사항이다. 번번이 반대해오던 강만수 재정부 장관은 지난 18일 "지금은 부동산 투기보다 디플레이션(자산가치 하락)을 걱정해야 할 때"라며 "국토부의 부동산 관련 규제 완화 대책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혀 이날 핵심 규제가 대거 완화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정부는 강남 집값 상승을 부추기고,'강부자'(강남 부자)를 위한 규제 완화라는 비판 여론을 의식해 좀 더 시장을 지켜보기로 했다. 특히 강남 3구의 투기지역 및 투기과열지구 해제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투기 광풍의 진원지였던 강남 3구의 마지막 규제를 풀 경우 투기 조짐이 되살아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는 표면적인 이유이며 정치권을 의식한 정치행위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여야가 대치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야당인 민주당이 도입한 분양가 상한제 등을 폐지할 경우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추후 논의 후 결정

이날 국토부는 3대 부동산 규제 완화를 놓고 하루종일 갈팡질팡했다. 국토부가 이날 오전에 보고한 대통령 업무보고 자료에는 부동산 3대 규제를 모두 풀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이와 달리 국토부가 기자들에게 배포한 업무보고 자료에는 이 내용이 쏙 빠져 있어 혼선을 빚었다. 결국 국토부는 업무보고가 끝나자마자 부동산 3대 규제 완화를 '보류'한다고 기자실로 다급하게 알려왔다. 국토부가 청와대,재정부,한나라당과 충분한 협의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부동산 규제 완화를 언론에 흘리는 바람에 국민들에게 혼선을 일으킨 셈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토부 업무보고를 받은 뒤 "관련 부처가 협의를 통해 좀 더 신중하게 검토해서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과거 정부는 집값을 잡기 위해 각종 규제를 했지만 결국 다시 집값은 올랐다"며 "부동산 정책은 규제 정책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금융정책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규제 완화를 반대한 것은 아니다"며 "다만 시기 등을 조절하라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국토부 관계자는 "부동산 3대 규제를 폐지하는 방안을 전면 취소하거나 유보하는 것이 아니라 이른 시일 내에 재추진할 예정"이라며 재정부와 한나라당과 추후 협의를 거쳐 결정한 뒤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3대 쟁점에 대해 전부 보류를 지시했다"고 밝혀 앞으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국토부 관계자도 "이른 시일 내가 언제냐"는 기자들의 거듭된 질문에도 명확한 시기를 못박지 않아 이들 핵심 규제를 푸는 데는 다소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김문권/박수진 기자 m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