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메뉴판 불신의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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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판에 표시한 게 맞나,뭘 더 고쳐야 되나 걱정하는 게 하루 일과였습니다. "
서울 무교동 A식당의 L사장은 "오늘(22일)부터 원산지 표시제가 확대 시행된다고 해 어제 공문을 보며 종일 메뉴판을 수정했지만 고쳐놓고도 혹시 표시가 누락된 게 있나 자꾸 쳐다보게 된다"고 말했다.
돼지고기 닭고기 배추김치에 대해서도 원산지 표시제가 시행된 첫날인 22일.이미 예고됐고 지난 7월 쇠고기 원산지 표시제를 경험한 터라 음식점주들은 크게 당황해 하진 않았다. 하지만 움츠러든 경기에 매서운 추위까지 겹쳐 손님이 뚝 떨어진 점주들은 한결같이 볼멘 표정이었다.
B음식점 사장은 "단골손님들이 메뉴판을 보고 여기도 표시해야 한다고 하기에 얼른 고쳐놨다"며 "원산지 표시가 필요한 건 알지만 장사도 안 되는데 정부가 지원은커녕 이런 걸 자꾸 시키니 귀찮다"고 짜증냈다. 돈암동 C분식 점주도 "원산지가 제각각이라 메뉴에 일일이 적으면 품도 많이 들고 지저분해 손님들이 알아보겠냐.시세에 따라 원산지가 바뀌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수시로 메뉴판을 바꿔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명동에서 만난 직장인 H씨는 "얼마 전 아일랜드산 돼지고기에서 다이옥신이 검출되는 등 잊을 만하면 먹거리 사고가 터지니 메뉴판을 꼼꼼히 살피게 된다"고 말했다. 남대문시장을 찾은 한 주부는 "(음식점에) 들어가자마자 메뉴판부터 살피고 국산이 아니면 다시 나온다"며 "이제 더 많은 식재료들의 원산지를 알게 됐으니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정부 단속과 식파라치들이 무서운 음식점주들이나,먹거리 안전에 신경이 곤두서 있는 소비자들이나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메뉴판을 바라보는 모습은 어찌보면 닮은 꼴이다. 이는 모두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할 '불신의 비용'인 셈이다. 이날도 서울시는 젖소 등을 한우로 속여 판 업소 9곳을 적발했다.
음식점주들은 원산지 속이기가 근절되지 않는 한 아무리 귀찮아도 메뉴판의 원산지를 일일이 고쳐쓸 의무가 있다. 신뢰라는 자본이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다른 어떤 외국산보다 '국내산'이 소비자들의 믿음을 얻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진석 생활경제부 기자 iskra@hankyung.com
서울 무교동 A식당의 L사장은 "오늘(22일)부터 원산지 표시제가 확대 시행된다고 해 어제 공문을 보며 종일 메뉴판을 수정했지만 고쳐놓고도 혹시 표시가 누락된 게 있나 자꾸 쳐다보게 된다"고 말했다.
돼지고기 닭고기 배추김치에 대해서도 원산지 표시제가 시행된 첫날인 22일.이미 예고됐고 지난 7월 쇠고기 원산지 표시제를 경험한 터라 음식점주들은 크게 당황해 하진 않았다. 하지만 움츠러든 경기에 매서운 추위까지 겹쳐 손님이 뚝 떨어진 점주들은 한결같이 볼멘 표정이었다.
B음식점 사장은 "단골손님들이 메뉴판을 보고 여기도 표시해야 한다고 하기에 얼른 고쳐놨다"며 "원산지 표시가 필요한 건 알지만 장사도 안 되는데 정부가 지원은커녕 이런 걸 자꾸 시키니 귀찮다"고 짜증냈다. 돈암동 C분식 점주도 "원산지가 제각각이라 메뉴에 일일이 적으면 품도 많이 들고 지저분해 손님들이 알아보겠냐.시세에 따라 원산지가 바뀌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수시로 메뉴판을 바꿔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명동에서 만난 직장인 H씨는 "얼마 전 아일랜드산 돼지고기에서 다이옥신이 검출되는 등 잊을 만하면 먹거리 사고가 터지니 메뉴판을 꼼꼼히 살피게 된다"고 말했다. 남대문시장을 찾은 한 주부는 "(음식점에) 들어가자마자 메뉴판부터 살피고 국산이 아니면 다시 나온다"며 "이제 더 많은 식재료들의 원산지를 알게 됐으니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정부 단속과 식파라치들이 무서운 음식점주들이나,먹거리 안전에 신경이 곤두서 있는 소비자들이나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메뉴판을 바라보는 모습은 어찌보면 닮은 꼴이다. 이는 모두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할 '불신의 비용'인 셈이다. 이날도 서울시는 젖소 등을 한우로 속여 판 업소 9곳을 적발했다.
음식점주들은 원산지 속이기가 근절되지 않는 한 아무리 귀찮아도 메뉴판의 원산지를 일일이 고쳐쓸 의무가 있다. 신뢰라는 자본이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다른 어떤 외국산보다 '국내산'이 소비자들의 믿음을 얻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진석 생활경제부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