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에서 배운다] ② 9월외평채발행연기‥안일한 대처로 '현금확보'무산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글루벌 금융경색' 판세 못 읽고…
"9월 위기설이 진짜인지 아닌지 분명히 보여주겠다. "
지난 9월4일 신제윤 기획재정부 차관보가 10억달러 규모의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발행계획을 발표하면서 했던 말이다.
그는 "한국이 위험하다는 주장은 국내에서나 나오지 세계 어디에서도 한국경제 위기론을 말하는 곳은 없다"며 외평채 발행을 통해 위기설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입증하겠다고 자신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였다. 외국계 투자은행(IB)은 "미 국채금리에 180bp(100bp=1%포인트) 이내의 금리만 얹어주면 발행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투자자 사전접촉 결과를 보고했다. 설명회에 예상보다 훨씬 많은 투자자들도 찾아왔다. 국제금융시장에서 거래되는 한국물 CDS(크레디트 디폴트 스와프) 금리가 미 국채 금리(당시 연3.81%) 대비 200bp 수준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180bp정도면 성공으로 평가될 만했다.
채권 발행을 하루 앞둔 10일부터 갑자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미국발 금융위기의 기폭제가 된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터졌다. '충격'과 '공포'가 엄습했다. 악재는 이뿐 아니었다. 한국에 대한 최대 위험요인 중 하나로 꼽는 '북한 변수'가 나왔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중병에 걸렸다는 소문이 돌았고,한국과 미국의 정보당국도 이를 확인했다.
여건은 하루 새 달라졌다. 투자자들은 210bp 이상을 요구했다. 신 차관보는 마지막 순간까지 고심했다. 발행을 포기하자니 호언장담을 해놓은 자신에게 비난이 쏟아질 게 뻔했다. 강행하자니 뒤이어 채권발행을 해야 하는 국내 금융회사나 기업들에 너무 높은 기준금리를 제시하는 꼴이 돼 걱정이 컸다.
11일(한국 시간) 저녁 신 차관보는 연기결정을 내렸다. 이유는 두 가지.채권발행의 첫 동기였던 '9월 위기설 진화'는 더 이상 신경쓸 필요가 없어졌다. 그 새 외국인들이 채권을 팔아치우기는커녕 오히려 순매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국내 금융회사들을 위한 지표금리' 제시라는 두 번째 동기는 높은 금리로 발행해 뒤따르는 금융회사들에 부담을 주기보다는 차라리 접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 결정은 '장고 끝의 악수'가 되고 말았다. 국제금융시장은 하루가 다르게 경색됐고,얼마 지나지 않아 외화채권 발행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 왔기 때문이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도 11월3일 국회 답변을 통해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자평했다.
정부가 그로부터 한 달여 후 300억달러 규모의 한.미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지만 돌아볼수록 아쉬움이 남는 결정이었다.
'금융 쓰나미'가 코앞에 닥쳤는데도 상황인식이 안일했던 점,금융경색기에는 다소 금리가 높더라도 일단 현금을 확보하는 게 최선이라는 명제를 저버린 점 등이 실책으로 꼽힌다.
김인식 기자 sskiss@hankyung.com
"9월 위기설이 진짜인지 아닌지 분명히 보여주겠다. "
지난 9월4일 신제윤 기획재정부 차관보가 10억달러 규모의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발행계획을 발표하면서 했던 말이다.
그는 "한국이 위험하다는 주장은 국내에서나 나오지 세계 어디에서도 한국경제 위기론을 말하는 곳은 없다"며 외평채 발행을 통해 위기설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입증하겠다고 자신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였다. 외국계 투자은행(IB)은 "미 국채금리에 180bp(100bp=1%포인트) 이내의 금리만 얹어주면 발행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투자자 사전접촉 결과를 보고했다. 설명회에 예상보다 훨씬 많은 투자자들도 찾아왔다. 국제금융시장에서 거래되는 한국물 CDS(크레디트 디폴트 스와프) 금리가 미 국채 금리(당시 연3.81%) 대비 200bp 수준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180bp정도면 성공으로 평가될 만했다.
채권 발행을 하루 앞둔 10일부터 갑자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미국발 금융위기의 기폭제가 된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터졌다. '충격'과 '공포'가 엄습했다. 악재는 이뿐 아니었다. 한국에 대한 최대 위험요인 중 하나로 꼽는 '북한 변수'가 나왔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중병에 걸렸다는 소문이 돌았고,한국과 미국의 정보당국도 이를 확인했다.
여건은 하루 새 달라졌다. 투자자들은 210bp 이상을 요구했다. 신 차관보는 마지막 순간까지 고심했다. 발행을 포기하자니 호언장담을 해놓은 자신에게 비난이 쏟아질 게 뻔했다. 강행하자니 뒤이어 채권발행을 해야 하는 국내 금융회사나 기업들에 너무 높은 기준금리를 제시하는 꼴이 돼 걱정이 컸다.
11일(한국 시간) 저녁 신 차관보는 연기결정을 내렸다. 이유는 두 가지.채권발행의 첫 동기였던 '9월 위기설 진화'는 더 이상 신경쓸 필요가 없어졌다. 그 새 외국인들이 채권을 팔아치우기는커녕 오히려 순매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국내 금융회사들을 위한 지표금리' 제시라는 두 번째 동기는 높은 금리로 발행해 뒤따르는 금융회사들에 부담을 주기보다는 차라리 접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 결정은 '장고 끝의 악수'가 되고 말았다. 국제금융시장은 하루가 다르게 경색됐고,얼마 지나지 않아 외화채권 발행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 왔기 때문이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도 11월3일 국회 답변을 통해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자평했다.
정부가 그로부터 한 달여 후 300억달러 규모의 한.미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지만 돌아볼수록 아쉬움이 남는 결정이었다.
'금융 쓰나미'가 코앞에 닥쳤는데도 상황인식이 안일했던 점,금융경색기에는 다소 금리가 높더라도 일단 현금을 확보하는 게 최선이라는 명제를 저버린 점 등이 실책으로 꼽힌다.
김인식 기자 sskis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