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을 앞두고 고(故) 남상국 사장 유족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사건이 표면화되면서 법리해석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지만 법리가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 당시 상황을 보다 깊이 천착할 필요가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언급한 "별 볼일 없는 사람에게 가서 머리 조아리고 돈 주고 하는 일"이란,남 사장이 대우건설 간부를 통해 노건평씨에게 3000만원을 전달했다는 검찰의 발표내용을 말한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 결과는 상당 부분 다르다. 남 사장이 노건평씨를 찾아가 직접 돈을 전달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노건평씨의 처남 등이 남 사장 측에 로비가 필요하다고 먼저 제의했다는 것이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은 거두절미하고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한 것이다. 또한 생중계되는 기자회견에서 남상국 사장 건을 공식 거론해야 할 절박한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더욱이 노건평씨는 기자회견 하루 전에 이 사건으로 '불구속 기소'됐다. 노 전 대통령은 이같이 미묘한 상황에서 자신의 형을 '순진한 촌로'로 묘사하고 남 사장을 공개적으로 매도했다. 사전적으로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이는 사법절차가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 대통령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개입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좋은 대학 나오고 출세한 사람'과 '시골에 있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은 대통령의 부적절한 언사가 아닐 수 없다. '좋은 대학'이 무엇인가. 좋은 대학은 국가를 이끌어갈 인재를 길러내는 산실이다. '좋은 대학'을 없애면 '나쁜 대학'이 저절로 '좋은 대학'으로 변하는가.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좋은 대학'은 어떻게 할 것인가. '출세의 의미'는 무엇인가. 남이 필요로 하는 인재'가 되는 것이 출세하는 것이다. 인재는 부존자원이 아니다. 인재는 경쟁을 통해 연마되고 길러지는 것이다. '땀과 눈물 그리고 명예'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 '시골에 있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시골에 있는 사람들은 다'별 볼일 없는 사람'인가. 이만큼 시골 사람들을 모욕하는 말도 없다. 자기와 자신의 피붙이를 낮출 수는 있어도 남을 낮춰서는 안 된다.
노 전 대통령의 당시 발언은 '무심코' 뱉은 말이었나? 상식적인 판단으로,TV 생중계에서 '즉흥적인 발언'이 나오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고도의 계산된 발언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사회적 강자의 일그러진 위선과 비굴을 극화시키고자 했을 수도 있다. 참여정부는'강남,삼성,서울대'를 들먹였고,'98 대 2'의 대립구도를 설정했다. 그 정점에 노 전 대통령이 있었다.
노건평씨는 '촌로'였나? 그는 남상국 사장 건으로 법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집행유예기간 중 농협회장에게 세종증권을 인수하라는 청탁을 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되기 훨씬 전,불미스런 일로 세무공무원을 그만 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권력형 부패 이전에 그는 '이미' 부패했었다. 대통령이 자신의 형을 정말 모르지 않았다면,의도적으로 감싼 것이다.
대통령은 취임에 앞서 국민에 대해 선서한다. 그 핵심은 헌법을 수호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이 지켜냈어야 할 국민 한 사람을 한강으로 떠민 거나 진배없다.
노 전 대통령도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화합 차원에서 결자해지의 대승적 용기가 요구된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가 사치가 되어서야 되겠는가?
/조동근 명지대 교수.경제학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