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영 < 서강대 교수.국제경제학 >

이러다 자동차 산업 지원을 놓고 세계적으로 보호주의가 확산돼 1930년대 대공황의 악몽이 재현되는 것은 아닌가? 지난 19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GM과 크라이슬러에 대한 174억달러 구제금융 발표가 있은 후 독일,영국,일본이 기다렸다는 듯이 다투어 자기나라 자동차 산업을 지원하겠다고 나선 데 대한 우려다.

미국이 자동차산업을 살리기 위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돈을 퍼붓고 자국시장 보호를 위해 한.미FTA 비준을 미루면 다른 나라들이 이걸 따를 것이고 이는 '뉴욕발(發) 세계금융위기'가 아닌 '디트로이트발 세계적 보호주의'로 확산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워싱턴이 '빅3'에 긴급지원을 해주며 내건 혹독한 조건을 보면 앞으로의 사태가 우려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 같지는 않다. 사실 부시 대통령은 지난주 '3개월짜리 시한폭탄'을 오바마 당선자와 게틀핑거 전미자동차노조 위원장에게 던졌다. '몇 개월 연명할 자금은 주지만 내년 3월까지 임금삭감,경영진의 보수 제한 등 모든 미국인이 납득할 자구계획 카드를 내놓아라.그렇지 않으면 지원자금을 회수하며 질서있는(orderly) 파산절차에 들어가겠다'는 으름장이다.

백악관을 떠나며 후임자에게 던진 실로 절묘한 선물(!)이다.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으로선 오물바가지를 뒤집어 쓴 셈이다. 노조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당선된 그로선 취임한 지 불과 세 달 만에 자신이 '미국산업의 뼈대'라고 칭송한 '빅3'를 도산시키긴 힘들다. 적당히 넘기려 들면 전임자가 설치한 '파산시한폭탄' 때문에 여론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실로 난감한 사면초가다. 유일한 탈출구는 노조가 70달러가 넘는 GM의 시간당 임금을 미국 내 도요타 수준인 50달러로 끌어내리는 고통스런 임금삭감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게틀핑거 위원장은 벌써부터 정치적 동지(!) 오바마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고 있다. 지난 19일 발표가 있은 뒤 '부시정부의 조치는 노조에 불리한 불공정한 조건이기에 새 대통령이 출범하면 이를 고치겠다'고 버티고 있는 것이다. 뼈저린 구조조정을 할 생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이렇게 서로 버티기로 나가면 결국 '빅3'의 갈 길은 우리식 법정관리 비슷한 상태에 들어가 정부에서 임명한 자동차 황제(Czar)의 손에 혹독한 칼질을 당하고 외국기업에 팔리든지 서로 합병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미국의 고민을 강 건너 불 보듯이 보고만 있을 때가 아니다. 국내 자동차산업도 '선제적으로 과감한' 구조조정 조치를 하지 않으면 미국 짝이 나지 말란 법이 없다. 도요타,르노 등 외국기업은 진작부터 감원,임금삭감을 하며 발 빠른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우리는 그간 한국 자동차산업 호재론에 정신이 나가 있었다. 경기가 나빠 미국에서 소형차가 더 많이 팔려 우리에게 유리하고,구미 시장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도요타와 달리 우리 주력시장은 신흥경제권이기에 비교적 무풍지대라는 것이다. 이 지경이니 엄청난 도덕적 해이에 빠져 구조조정은커녕 생산라인 하나 바꾸는 것 가지고도 노사가 티격태격거렸다.

쌍용자동차가 12월 월급을 못 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후 간판기업이 비상경영이란 걸 선포했는데 그 내용을 들여다 보면 골자는 가장 만만한 관리직의 임금동결 수준이다.

위기가 기회이다. 우리 자동차 산업에 그간 쌓여온 잘못된 노사관행을 호황일 때는 절대 못 고친다. 방만한 경영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노사가 정작 위기의식을 느껴 한 발씩 서로 물러설 때 기업체질을 개선할 수 있다. 정부는 노사가 고통을 분담하며 혹독한 자구책을 내놓기 전에는 절대 어떠한 형태의 퍼주기식 지원을 해선 안 된다. GM의 교훈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