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주류업계 인사가 전화를 걸어왔다. "지방 주류 도매상에서 소주 가격이 오른다는 첩보가 들어왔습니다. 한 번 확인해 보세요. 원자재 가격이 많이 올라 인상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

연말 주류업계에 소주값 인상설이 돌고 있다. 올 들어 라면 과자 우유 등 웬만한 식음료 가격은 다 올랐지만 '서민의 술' 소주만큼은 가격(출고가)이 한결 같았다. 지난해 5월 진로가 5%가량 올린 뒤 19개월째 변동이 없었고 최근까지도 인상 얘기는 금시초문이었다. 부랴부랴 제보 받은 '소주값 인상설'을 다각도로 취재해보니 어처구니 없는 사실을 알게 됐다.

소주값 인상설은 연말께면 한 번씩 나오는 연례 해프닝이란 것이었다. 주로 지방 소주업체들이 가격 인상설을 퍼뜨리는 경우가 많은데 올해도 일부 업체가 소문의 진원지로 지목되고 있다. 한 소주업체 관계자는 "판매 목표를 못 채운 업체들이 연말께 가격 인상설을 퍼뜨려 주류 도매상들의 사재기를 부추긴다"고 귀띔했다. 주류 도매상들이야 오르기 전에 사두면 인상분만큼 이득이니 서둘러 매집하게 마련이다. 소주업체는 매출 목표를 맞추기 위해 가격 인상 소문을 흘리고 싶은 유혹에 쉽게 빠져든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실제 인상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소주업체들에 알아보니 인상요인은 많지만 실제 인상을 단행할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입장이다. 한 소주업체 임원은 "가격 인상은 업계의 '희망사항'이지만 실현 가능성은 30% 미만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원가부담 강도가 갈수록 커진다는 점에선 한 목소리다. 소주 원료인 주정 가격이 지난달 10%가량 오른 데다 유리병,포장재 가격도 뛰어 수익성이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주는 이른바 'MB물가지수' 52개 품목에 포함돼 있고 주류업 자체가 면허사업이다. 가격 인상이 쉽지 않다고 보는 이유다. 소주 가격은 각 업체가 결정하지만 정부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정부도 원가부담이 극단적으로 높아지지 않는 한 소주값 인상을 쉽사리 용인하진 않을 것으로 업계에선 보고 있다.

경기침체로 모두들 힘겨워하는 요즘이다. 일부 소주업체들의 얄팍한 상술이 서민들의 움츠러든 마음을 더욱 어둡게 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다른 것은 다 올라도 소주값만큼은 서민들 편에 섰으면 하는 바람은 지나친 기대일까.

김진수 생활경제부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