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의식 선심정책 집착
총리 지지율 20%선으로 추락
글로벌 불황에 리더십까지 흔들

"지금 같은 불황에 현금을 나눠준다고 해서 누가 소비에 쓰겠는가. 결국 퍼주기로 끝날 것이다. "(아오야마양복 야마시타 노부오 점장) "누가 쓸 돈을 달라고 했나. 국민들이 원하는 건 일자리다. "(파견직 사원 다쓰모토 기이치)

일본 정부가 경기 진작을 위해 전 국민에게 1만2000엔(약 17만원)씩을 나눠주는 2조엔의 현금 지급정책 시행방안을 발표한 지난 19일.시민들의 반응은 의외로 차가웠다. 여론조사 결과 현금 지급정책에 '반대한다'는 의견이 60%를 넘었다. 정부가 '공돈'을 나눠준다는 데 일본 국민들은 왜 시큰둥할까.

이유는 9년 전 비슷한 정책을 썼지만 재정만 축내고 경제 살리기 효과는 별로 없었다는 뼈아픈 교훈 때문이다. '10년 불황'의 터널을 지나던 일본은 1999년 '지역진흥권'이란 상품권 7000억엔어치를 전 국민에게 나눠준 적이 있다. 하지만 당시 상품권 중 68%는 쌀이나 생필품 등에 사용됐다. 기본 생활에 들어가는 지출 말고 다른 소비를 늘리려는 정부 의도와는 달랐다. 효과도 없는데 돈을 마구 써버린 결과 일본은 지금 선진국 중에서도 최악의 재정적자 국가로 전락해 있다.

일본 경제의 불안 요인 중 무시할 수 없는 게 '정책 부실'이다. 실효성보다는 다가올 선거를 의식해 선심성 정책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평가다. 별로 사용되지도 않은 지방 도로 건설 확대 등이 대표적이다. 게다가 취임 3개월밖에 안 된 아소 다로 총리의 지지율이 20% 선의 바닥을 헤매면서 일본이 세계 불황의 파고를 제대로 넘을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지금까지 발표한 경기부양책 규모는 세계 최대다. 올 8월,10월,12월 중 모두 세 차례 내놓은 경기부양용 재정지출액은 12조엔(약 170조원).명목 국내총생산(GDP)의 2%로 독일(2%,6조4000억엔)과 함께 가장 큰 규모다. 문제는 실효성이다.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의 나가하마 도시히로 이코노미스트는 "전 국민에게 현금을 나눠주거나 고속도로 통행료를 깎아주는 대책 등은 고용 창출 효과가 거의 없다. 돈을 쓰려면 환경기술 등 미래 대비 투자를 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미즈호종합연구소는 현금 지급이 소비로 이어져 GDP 성장에 기여하는 건 0.1~0.2%포인트에 불과할 것으로 분석했다.

또 대부분 경기대책이 내년(2009년 4월~2010년 3월) 예산이 확정된 4월 이후에나 시행된다는 것도 문제다. 원래 경기대책용 재원 마련을 위해 연내 2차 추가경정예산을 만들어야 했지만,아소 총리가 정치적 이유로 재원을 내년 본예산에 반영하기로 했다. 자칫 추경예산안이 이슈가 돼 연말에 정권이 코너에 몰리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총리가 경제보다 정권을 우선하는 와중에 안팎에선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 JP모건체이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주변 여건을 보면 일본은 1990년대 버블 붕괴 때보다 더 심각한,2차대전 이후 최악의 불황에 빠질 것"으로 전망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일본의 3분기(7~9월) -1.8% 성장은 수치로만 보면 미국보다 더 심각한 것"이라며 "일본이 경제위기의 중심인 미국보다 더 깊은 불황에 빠질 수 있다"고 전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