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가족부가 24일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한 새해 업무 계획은 경제난 속에 고통받는 극빈층을 구제하고 저소득층의 증가를 막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취약 계층의 증가가 사회 통합과 발전을 저해하고 심하면 국가 전체의 중대한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인식에서다.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각종 회의 석상에서 "신빈곤층에 대한 사회 안전망 구축에 힘써달라", "절대 빈곤층은 정부가 책임진다는 자세로 철저히 임해달라"고 주문한 것과도 맥이 닿아있다.

복지부는 이명박 정부 출범 2년째를 맞아 당면한 경제 난국을 해소하기 위한 `키 플레이어' 역할을 자임하면서 빈곤 해결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 구축에 진력하겠다는 의지를 이번 업무 보고를 통해 드러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위기 가정도 생계 유지하도록" = 복지부는 중병과 같은 예기치 못한 재앙으로 생계조차 유지할 수 없는 가정을 지원하는 일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먼저 저소득층 가정의 가장이 사고나 질병으로 입원하거나 운영하던 점포를 휴업 또는 폐업할 때도 최저생계비(4인 가구 기준 132만6천609원)를 받을 수 있는 긴급지원 대상에 포함하도록 했다.

현재는 저소득층 가장이 사망, 가출, 행방불명됐을 때만 긴급지원 대상에 최저생계비를 지원하고 있으며, 사고나 질병으로 입원했을 때는 최대 2회 600만 원까지 입원비만 준다.

지원 기간도 현재 4개월에서 내년 3월부터는 6개월로 늘어나고 저소득층으로 보는 재산 기준도 현재 금융재산 120만 원 이하, 총 재산 9천500만 원 이하에서 금융재산 300만 원 이하, 총재산 1억3천300만 원 이하로 완화된다.

다만 소득 기준은 현행 최저생계비의 1.5배(199만원) 이하 수준을 유지했다.

기초생활보장 대상자 기준도 완화해 최저생계비를 받을 수 있는 재산 보유액 상한 기준이 대도시는 현재 6천900만 원에서 8천500만 원으로, 중소도시는 6천100만 원에서 6천500만 원으로 인상된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하는 결식아동 급식 지원 사업을 올해 여름과 겨울방학 동안 한시적으로 국고 지원 사업으로 이관하는 동시에 담임교사, 통ㆍ리ㆍ반장 등을 활용해 결식아동을 조기 발견함으로써 효율적 지원을 할 방침이다.

이 경우 지원 대상 결식아동은 올해보다 16만 명 늘어난 45만4천 명이 될 것으로 복지부는 예상했다.

◇"돈 없어도 아프면 치료받아야" = 건강보험 지역보험료 납부액이 월 1만 원 이하인 저소득층 70만 세대에 대해 보험료를 절반만 내도록 했다.

의료급여 2종 대상자의 입원 시 본인부담률도 5% 포인트 인하하고 본인부담 상한액도 현재 6개월 120만 원에서 60만 원으로 절반을 깎았다.

실직 또는 퇴직 후 건강보험 가입 자격을 인정해주는 기간도 현행 6개월에서 1년으로 늘어난다.

직장을 다닌 것으로 보는 기간도 2년 이상에서 1년 이상으로 대폭 완화했다.

만약 경제 상황이 더 악화될 경우 건강보험료 하위 50%를 대상으로 입원ㆍ수술 비용을 낮은 이율로 장기간 빌려주고 의료급여 수급자는 중증질환의 본인부담금을 무료로 해주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취약계층 발굴ㆍ지원 신속화 = 정부의 지원이 늦어져서 취약 가구에 큰 문제가 생기는 일을 막고자 복지 지원의 신속성을 강화키로 했다.

복지부와 시ㆍ군ㆍ구, 읍ㆍ면ㆍ동에 정부와 민간이 함께 참여하는 `민생안정지원본부'를 신설해 긴급지원 접수 시 하루 안에 현장 확인 작업을 마침으로써 지원 여부를 최대한 신속히 결정하도록 할 방침이다.

당초 복지부는 공무원이 주도하는 `긴급복지지원단'이란 명칭의 지원 기구를 행정 단위마다 신설하는 방안을 보고했으나 "민간도 참여하는 기구로 해야 한다"는 이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추진 계획을 수정했다.

또한 복지 전달체계 개편을 통해 복지 서비스 제공에 걸리는 기간을 현재 평균 17일에서 8일로 줄이고, 민간복지단체와 협력해 `민생안정 지원본부'도 발족할 예정이다.

◇사회적 일자리 취약계층 우선제공 = 휴업 또는 폐업한 영세자영업자와 실직한 임시일용직 가구 중 최소한 가족 구성원 1명은 일자리를 갖도록 사회서비스 일자리 숫자를 올해보다 2천 개 많은 7만2천 개로 늘린다.

특히 신규 발생ㆍ조정되는 사회 서비스 직업 1만4천250개가 가장 취약한 계층인 저소득 무직 가구의 여성에 제공된다.

또한 저소득층 자활 대책과 관련해 신용 제한으로 어려움을 겪는 저소득 가구에 마이크로 크레디트(무보증 소액 신용대출) 지원이 확대된다.

지난해보다 6배 이상 늘어난 예산을 투입해 지원 대상을 현재 180가구에서 1천100가구로 대폭 늘리기로 했다.

◇경제 악화시 추가 대책 = 현재보다 경제 위기가 더 심해질 경우 기초생활보장 대상이 되지 못한 빈곤층에 대한 지원을 강화한다는 복안이다.

복지부는 긴급지원 기간이 끝나고 기초생활보장 대상자가 아닌 사람은 최저생계비의 50%에 해당하는 금액을 현금 또는 물품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한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이나 재산 기준이 초과돼 기초생활보장 대상이 되지 못한 사람의 경우 보유 자산을 담보로 가장 낮은 이율로 생계비를 빌려주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복지부는 당초 이 같은 방안을 내년 업무 계획의 주요 과제로 확정하려 했으나 사전 준비 부족과 촉박한 시간 탓에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막판까지 예산당국과 줄다리기 = 복지부는 이 같은 내용의 사회 안전망 강화 방안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진통을 거듭했다.

예산 소요액이 큰 만큼 이 대통령에게 최종안을 사전보고하기 전인 전날 오후까지도 기획재정부와 밀고 당기는 신경전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세부 항목마다 지원 기준과 기간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써야 할 예산이 달라지기 때문에 `토씨' 하나까지도 논란이 됐다고 한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확정된 안전망 강화 대책의 재원 조달도 문제다.

어림잡아 2천억 원이 넘는 복지 재정이 추가로 소요될 전망이지만 추가경정예산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으면 시행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복지부는 기존 예산의 절감과 각종 기금 활용 등을 통해 모자라는 재원을 어느 정도 메운다는 방침이지만 결국 예산 당국과 국회의 계속된 협조가 없다면 이번 대책도 `생색내기'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이날 업무보고 자리에서 "과거에도 알면서도 못한 게 많았던 만큼 실천이 문제"라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은 또 "복지와 관련된 4개 부처가 업무가 중복되지 않도록 서로 잘 협력해서 하라"고 지시했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lesli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