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 전반에 실업공포 확산

대기업노조 양보로 고통분담을

내년에는 외환위기보다 더한 최악의 실업대란이 올 것 같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 18일 188개 회원사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절반 정도가 내년 상황이 외환위기 때보다 나빠질 것으로 보았다. 내년 성장률을 마이너스로 전망한 CEO도 20%나 됐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전부터 우리경제는 이미 일자리 창출 능력을 상당히 상실하고 있었다. 작년까지는 취업자 증가수가 30만명 안팎이었으나 점점 줄어들어 올해 10월에는 10만명 이하로 떨어졌고 지난 11월에는 7만8000명에 불과했다.

공식적인 실업자 75만명 이외에도 일자리 찾기를 포기한 사람,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 등을 포함하면 실질적인 실업자는 지난 11월 기준 275만명으로 늘어나 공식적인 실업률은 3.1%이지만 체감실업률은 10.7%로 3배 이상 높아진다.

주요 대기업들은 인위적인 인력감축이 없다고 하지만 이미 많은 기업들은 인력조정을 고려하고 있으며 이제 실물경기 침체가 본격화돼 마이너스 성장시대라도 오면 회사가 망해 혹은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밀려나는 실업공포가 곧 현실화될 것이다.

또 우려스러운 것은 일자리 감소의 피해가 기간제나 일용직 등 소외계층에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상용근로자의 일자리는 늘어나나,임시ㆍ일용근로자의 일자리는 줄어드는 상황이 2007년 하반기 이후 계속되고 있다. 더욱 두려운 것은 내년 초 대학을 졸업하는 청년층의 일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토익성적을 높이고 자격증이 여러 개 되어도 사람을 뽑지 않으니 취업이 될 수 없다.

고통의 시기에 고용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 전체에 일자리를 나누어 서로의 고통을 분담하는 공동체의식이 확산되어야 한다. 특히 대기업들이 솔선수범해 선도해야 한다.

최근에 모 시중은행에서 30대 행원까지 명예퇴직제를 확대 시행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그러나 명예퇴직의 확대보다는 임금삭감을 통해 일자리 나누기가 우선되어야 한다. 이 은행 직원들의 평균연봉은 6000만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월급여를 50만원 삭감하면 10% 인원을 고용조정할 필요가 없어진다.

상대적으로 적은 사람을 설득하기 때문에 명예퇴직을 통한 구조조정은 손쉬운 선택이지만 외환위기의 경험은 섣부른 구조조정은 조직의 단결력을 떨어뜨리고 이직한 사람들의 향후 노동시장에서의 성과도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비정규직을 우선적으로 해고하기 보다는 정규직의 양보로 비정규직의 해고가 최소화되도록 해야 한다. 대기업 노조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현대차 등 우리나라 대기업 노조들은 귀족노조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고용위기 속에서 비정규직과 일자리를 나눔으로써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노조로 거듭 날 수 있다. 마침 금속노조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일자리나누기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대기업 노조들을 설득하여 성과가 있기를 기대한다.

노동시장에 새로이 쏟아지는 대졸자들을 인턴사원으로라도 많이 고용해야 한다. 인턴사원을 뽑는 경우 훈련비용 등 기업들에 부담이 많이 가는 것도 사실이지만 어려운 시기에 고통을 분담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취지에서 현재와 같은 생색내기용 인턴사원 선발이 아닌,대규모 체계적인 인턴사원 선발과 훈련을 해야 한다. 특히 대기업들이 나서야 한다.

현재의 노정 관계로 볼 때 노ㆍ사ㆍ정 대타협과 같은 대안은 현실성이 없다. 개별기업의 현장에서 노사가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정부가 지원하는 효율적인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