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대통령, 서울시장 경험으로 본 공직자像은…

이명박 대통령이 공무원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거두지 않고 있다.

연말 8차례 계획된 부처 업무보고 중 3차례를 거치면서 취임 초와 달리 격려성 발언을 곁들였지만 질타성 지적은 여전하다. 집권 1년차가 지나가면서도 이명박 정부의 철학이 여전히 공직사회에 스며들지 않고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 대통령은 최근 부처보고에서 확실한 국가관을 주문한 데 이어 지난 24일엔 "복지예산이 각 부처에서 중복집행돼 왔다. 공무원들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 문제를 잘 알고 있지만…"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통령의 공무원에 대한 상(像)은 서울시장 시절 등 과거 경험에서 고스란히 각인돼 있다. 어려움이 예상되는 사업은 "안 된다"는 말부터 한다는 게 요지다.


◆성과보다 여론 눈치

이 대통령은 2004년 겨울철 잔디 보호를 위해 폐쇄하는 시청앞 서울광장에 스케이트 장을 만들자고 제안했지만 담당 공무원들은 예산 문제,안전사고 우려 등의 이유로 반대했다고 밝힌 적이 있다. 이 대통령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만들어서 역효과를 내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나라는 관료적 뉘앙스를 느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담당 공무원을 타박할 수도 없었다. 시민들에 대한 서비스와 성과보다는 여론과 책임에 민감한 공무원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아스팔트처럼 굳어진 사고

광화문에 횡단보도를 만드는 것과 관련,공무원들의 경직된 사고를 지적한 바도 있다. 이 대통령은 "시민들을 위한 일인데 '지하도가 있는데 굳이 횡단보도를 위에다 설치해야 합니까'란 관료들의 반대에 부닥쳤다"고 했다. 이를 두고 이 대통령은 "관료들의 주장은 아스팔트 처럼 단단하게 굳어진 사고였다.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개발시대의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며 "사람,환경,문화중심의 새 서울을 만들기 위해 그들과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모 대학의 건물 신축 허가 문제를 둘러싸고 시 공무원들이 교통영향평가 등을 들어 난색을 표했는데,이 대통령은 "하루 수천대의 차가 출입하는 상업용 건물과 캠퍼스 내 연구 목적의 신축 기준이 같아야 하나"라며 기계적이고 획일적인 평가를 비판했다.

◆안 된다는 생각 부터…

한 참모는 25일 "이 대통령의 공직사회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최고경영자 시절의 경험에서 비롯된다"며 "인·허가 등을 무기로 군림하는 자세 때문에 업무에 많은 차질이 빚어졌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청계천 복원 초기 업무 지원자가 단 두 명밖에 없었는데 서울시 공무원의 90%가 '안 되는 사업,탈이 많은 사업'이라고 생각하니 당연하다"고 고충을 토로했었다.

◆그래도 믿는다

이 대통령의 인사 원칙은 책임자를 끝까지 믿어준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실수가 있다고 해서 그때마다 갈아치운다면 누구도 소신껏 일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최근 "서울시장 때 공무원들이 자기 책임아래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경우 부담을 느껴 일이 잘 추진되지 않는 것을 보고 결재란에 '이건 시장의 지시'라는 것을 써 넣도록 했다"고 소개했다. 시장에 취임하자마자 시 고위관계자가 '살생부'를 작성해 가져왔으나 끝내 보지 않았다고 한다. 설득을 통해 반대편도 끌어안고 가야 한다는 지론에 따른 것이라고 회고했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