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풀어도 대출 안되는 이유 따로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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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체관리 강화에 심사는 더 깐깐해 지고…
지점 할당량만 겨우 체우고 연체관리 강화에 심사는 깐깐
정부 '면책방침'에도 반신반의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파격적으로 인하하고 시중에 돈을 많이 풀고 있는데도 개인이나 중소기업인들이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는 여전히 어렵다.
정부와 한은이 대출을 늘리라고 독려해도 대출 영업의 최전선인 은행 지점에서는 약발이 먹히지 않고 있다. 주요 은행 지점장들의 얘기를 들어 보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서울 강남에서 A은행의 개인금융 점포를 책임지고 있는 김모 지점장은 요즘 신규 대출 고객을 찾아다니지 않는다. 올해 초 본점에서 할당받은 연간 지점 대출 목표가 작년보다 10% 이상 늘어난 240억원에 달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말 본점에서 이 목표치를 20%가량 줄인 탓에 김 지점장은 지난 10월 벌써 목표치를 다 채웠다. 그는 "올해 대출을 더 늘리면 내년 목표액이 추가로 더 늘어난다"며 "당신이라면 대출을 더 늘리겠냐"고 반문했다.
상반기까지만 해도 영업점 성과평가(KPI)를 할 때 대출에 가점을 줬지만 하반기에 대출 가점을 없애는 대신 연체율을 낮추는 것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연체율 관리가 발등의 불이어서 기존 대출자들의 원리금 상황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 B은행의 이모 지점장은 "연말 연체율이 올라가면 내년 1월에 있는 인사에서 불이익을 받는다"며 "연체율 관리 외에 다른 지표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상황이 어려워져 연체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며 "담보가치 평가도 보수적으로 하고 대출 자금 용도를 상세히 캐묻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기업 대출을 늘리라는 정부의 압박도 개인 대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대외채무에 대한 정부의 지급 보증을 받는 대가로 12월 말까지 대출 증가액의 45% 이상을 중소기업 대출로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우량 중소기업을 찾기가 어려운 마당에 가계 대출을 섣불리 늘렸다가는 기업 대출을 억지로 늘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는 만큼 당분간 가계 대출을 취급하지 않겠다는 것이 은행 지점장들의 얘기다.
워크아웃이나 패스트 트랙 등 중소기업 대출에 면책을 해준다는 정부의 방침도 지점장들은 신뢰하지 않고 있다. 강북지역의 한 지점장은 "고의로 중과실을 범하지 않으면 책임이 없다는 면책제도는 외환위기 이후에도 시행됐지만 '고의'와 '중과실'은 주관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며 불신을 드러냈다.
이 때문에 정부는 부실 우려가 있는 일부 가계 대출의 채무 재조정에 대해서도 면책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지점장들은 은행별로 면책에 대한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지점장들은 또 돈을 떼이지 말아야 할 은행은 우량 기업과 신용도가 높은 개인에게만 대출할 수밖에 없는 처지인 만큼 정부가 보증을 늘려 서민이나 자영업자에게 대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
정부 '면책방침'에도 반신반의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파격적으로 인하하고 시중에 돈을 많이 풀고 있는데도 개인이나 중소기업인들이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는 여전히 어렵다.
정부와 한은이 대출을 늘리라고 독려해도 대출 영업의 최전선인 은행 지점에서는 약발이 먹히지 않고 있다. 주요 은행 지점장들의 얘기를 들어 보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서울 강남에서 A은행의 개인금융 점포를 책임지고 있는 김모 지점장은 요즘 신규 대출 고객을 찾아다니지 않는다. 올해 초 본점에서 할당받은 연간 지점 대출 목표가 작년보다 10% 이상 늘어난 240억원에 달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말 본점에서 이 목표치를 20%가량 줄인 탓에 김 지점장은 지난 10월 벌써 목표치를 다 채웠다. 그는 "올해 대출을 더 늘리면 내년 목표액이 추가로 더 늘어난다"며 "당신이라면 대출을 더 늘리겠냐"고 반문했다.
상반기까지만 해도 영업점 성과평가(KPI)를 할 때 대출에 가점을 줬지만 하반기에 대출 가점을 없애는 대신 연체율을 낮추는 것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연체율 관리가 발등의 불이어서 기존 대출자들의 원리금 상황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 B은행의 이모 지점장은 "연말 연체율이 올라가면 내년 1월에 있는 인사에서 불이익을 받는다"며 "연체율 관리 외에 다른 지표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상황이 어려워져 연체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며 "담보가치 평가도 보수적으로 하고 대출 자금 용도를 상세히 캐묻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기업 대출을 늘리라는 정부의 압박도 개인 대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대외채무에 대한 정부의 지급 보증을 받는 대가로 12월 말까지 대출 증가액의 45% 이상을 중소기업 대출로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우량 중소기업을 찾기가 어려운 마당에 가계 대출을 섣불리 늘렸다가는 기업 대출을 억지로 늘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는 만큼 당분간 가계 대출을 취급하지 않겠다는 것이 은행 지점장들의 얘기다.
워크아웃이나 패스트 트랙 등 중소기업 대출에 면책을 해준다는 정부의 방침도 지점장들은 신뢰하지 않고 있다. 강북지역의 한 지점장은 "고의로 중과실을 범하지 않으면 책임이 없다는 면책제도는 외환위기 이후에도 시행됐지만 '고의'와 '중과실'은 주관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며 불신을 드러냈다.
이 때문에 정부는 부실 우려가 있는 일부 가계 대출의 채무 재조정에 대해서도 면책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지점장들은 은행별로 면책에 대한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지점장들은 또 돈을 떼이지 말아야 할 은행은 우량 기업과 신용도가 높은 개인에게만 대출할 수밖에 없는 처지인 만큼 정부가 보증을 늘려 서민이나 자영업자에게 대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