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수출국기구(OPEC)를 본뜬 이른바 '가스 OPEC'이 공식 출범해 주목된다. 러시아 등 16개 천연가스 수출국 모임인 가스수출국포럼(GECF)은 최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회의를 열고 이 기구를 정식 출범(出帆)시켰다는 소식이다.

전 세계 가스매장량의 73%,생산량의 42%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 나라가 OPEC과 유사한 새로운 '에너지 블록'으로서 카르텔을 형성해 가격조정 등 담합에 나설 경우 세계 천연가스 시장에 큰 파장을 몰고 올 수밖에 없는 만큼 예의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이번 기구 설립에 산파역을 해 온 러시아가 세계 최대 보유량을 자랑하는 천연가스와 원유 등을 무기로 활용해 에너지 자원의 패권주의를 강화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든다.

물론 천연가스는 원유와는 달리 장기계약이 대부분이며,생산국과 소비국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 OPEC처럼 매달 생산량 조절을 통해 가격에 영향을 주기는 쉽지 않은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는 수출물량 확대에 주력하는 반면 이란 등은 가격 인상에 무게를 두고 있어 생산국들 간 합의를 이뤄내기도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 더욱이 글로벌 경제위기가 몰아닥치면서 그 동안 천정부지로 치솟던 원유값이 급락세로 돌아서고 천연가스 가격도 덩달아 폭락하고 있다.

하지만 수급문제 등 국제적인 상황에 따라 이러한 사정들이 언제 또 다시 변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더구나 전 세계 각국이 녹색성장을 목표로 내걸고 석유를 대체할 천연가스 활용에 신경을 쏟고 있는 만큼 향후 LNG(액화천연가스) 등의 가격이 상승할 가능성이 무척 크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가 이번 회의의 기조연설을 통해 "새로운 가스전은 접근성이 떨어져 개발과 운송에 큰 비용이 들 것"이라며 "값싼 천연가스 시대는 끝났다"고 경고한 것도 그러한 맥락이다.

이번 가스 OPEC 설립을 통해 가스 생산국들이 시장 지배력 확대에 나선 만큼 우리도 미리부터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특히 세계 2위 가스 수입국인 우리로서는 가스 OPEC의 가격정책 등에 적극 대비해나가야 할 것이다. 정부 당국은 파이프라인을 통해 시베리아 천연가스를 확보하고 비축시설을 건설해 수급 불안이 야기될 가능성에도 대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