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인터뷰] 성우 강수진 "내가 바로 '슬램덩크'의 강백호… 얼굴없는 목소리 스타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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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 생생인터뷰] 성우 강수진 "내가 바로 '슬램덩크'의 강백호… 얼굴없는 목소리 스타랍니다"
"그럼 또 빵 뺏아 먹어도 되겠네,헤헤헤.앗! 맞다. 산타 할아버지! 방금 한 말 취소에요, 취소~"
성탄절을 사흘 앞둔 지난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5층 스튜디오.녹음실 한 가운데 놓인 마이크 앞에 선 남자의 앳된 목소리가 속사포 터져나온다. 매일 오후 5시에 방영되는 KBS 2TV의 'TV유치원 파니파니'에서 콩깍지 캐릭터 '이크'를 연기하는 성우 강수진씨(43).왼손에 쥔 대본의 내용에 따라 검은 뿔테 안경을 낀 그의 표정은 개구장이처럼 변했다가 금세 화난 얼굴이 돼 주먹까지 불끈 움켜쥔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40대 남성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않을 만큼 천진하다.
강씨는 서울예전 방송연예과를 졸업하고 1988년 KBS 성우 공채 21기로 이 바닥(?)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다. 이후 줄곧 한 우물만 파 오다 2000년대 들어 케이블TV가 성장하고 일본 애니메이션 열풍이 불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슬램덩크'의 강백호,'이누야샤'의 이누야샤 등 유명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역할을 줄줄이 꿰찬 것.마니아 층이 두텁게 형성돼 있는 애니메이션 팬들에게 강씨는 이미 유명인사다. 외화 '로미오와 줄리엣'에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한 로미오 목소리를 맡기도 했다.
-20년 동안 성우만 해 오셨는데 장수 비결이 무엇인가요.
"사실 성우 중에는 반짝 스타가 거의 없습니다. 최소 10년 이상은 해야 이름이 알려지지요. 대신 한 번 이름이 알려지면 상당히 오래 가는 편입니다. '아이돌 스타'가 수시로 탄생하는 일반 배우들 세계에서는 6개월 만에도 피고 지고 하지만 성우의 세계에서는 상대적으로 그런 일이 드물죠."
-아나운서처럼 성우에겐 정확한 발음이 중요할 것 같은데요. 실생활에서도 '자장면'이라고 발음하시나요.
"성우나 아나운서처럼 대중 앞에 서는 직업인들은 우리말 보전에 큰 책임을 지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성우는 정확한 언어 전달을 목표로 하는 아나운서와는 달리 실생활에 좀더 가까운 언어를 구사합니다. 의사 전달은 물론 감정을 표현하고 개성을 창조해야 하기 때문이죠.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 '자장면'보다는 '짜장면'이 좋아요. (웃음)"
-성우는 흔히들 '천의 목소리'를 가졌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얼마나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습니까.
"대개 한 작품에서 하나의 캐릭터만 맡는 게 원칙이지만 열악한 제작 여건 때문에 1인 2~3역은 기본이고 4~5역까지 하는 경우도 꽤 있어요. 저는 특히 남자 성우로선 드물게 어린이 목소리를 잘 낸다고들 해요. 아이와 소년,청년,중년,노년 등 연령대별로 기본적인 목소리는 다 낼 수 있죠.필요하다면 태아까지도 연기해 드릴 수 있습니다. (웃음)"
-아무래도 성우가 되려면 목소리가 좋아야 하겠네요.
"과거에는 성악가처럼 중ㆍ저음의 음색을 가진 성우가 각광을 받은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좋은 목소리보다는 개성있는 음성이 오히려 환영을 받습니다. 특히 작품 속 캐릭터와 잘 어울리는 목소리라면 더욱 좋겠지요. 전통적인 의미에서 제 목소리는 좋은 편이 아닙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제 목소리에서 '의협심'이 느낄 정도로 개성이 있다고 해요. 또 어린아이 목소리를 잘 내는 덕분에 만화 주인공을 도맡는 경향이 있죠.원래 꿈은 배우였는데 성우 역시 배우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작품마다 틈만 나면 캐릭터를 연구하고 배역에 몰입해 감정을 제대로 전달하려고 애쓰는데 그런 점이 인정 받은 것 같아요. "
-목소리 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목 상태가 안 좋으면 예전엔 민간요법으로 도라지를 먹기도 했는데 평소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꾸준히 운동을 하는 등 종합적인 건강관리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스케줄이 워낙 들쭉날쭉하다보니 생활도 자칫 불규칙해지기 쉽거든요. 담배도 2년 전부터는 끊고 건강 관리에 좀더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
-성우로서 갖춰야 할 자질은 무엇입니까.
"성우를 좀더 넓은 의미에서 보면 배우와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개성있는 연기력과 성실함 등이 성우가 갖춰야 할 주요 덕목입니다. 그에 비해 오히려 목소리는 중요도 측면에서 3번째 정도로 밀려난다고 봐도 됩니다. "
-성우의 인기가 예전만은 못한 게 사실이지요.
"1970년대 라디오 시대의 성우는 그야말로 다들 최고로 선망하는 직업이었죠.그땐 또 국산 영화 출연 배우들의 목소리를 성우가 대신 연기하는 '더빙'이 일반적이고요. 게다가 1980~1990년대 TV 외화 시리즈가 인기를 끌면서 배한성 선배와 같은 '스타'까지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케이블TV를 중심으로 제작비 절감을 위해 자막을 씌우는 경우가 많아졌고 일반 대중이 오히려 여기에 익숙해지면서 성우들의 입지는 점차 좁아져 갔어요. 다행히 때맞춰 일본 애니메이션 열풍이 불면서 새로운 시장이 열렸지만 아무래도 마니아층에 집중되다보니 일반인들한테까지 어필하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
-그래서 아쉬운 점도 많으시겠어요.
"현재 일거리의 절반 이상을 애니메이션 더빙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저는 애니메이션 배역만 1000번 이상 했거든요. 게다가 애니메이션 시장의 90%는 일본이 점유하고 있어 성우 지망생 대부분이 일본 애니메이션 마니아들입니다. 애니메이션 성우만을 목표로 하는 이들은 단순히 학원에서 가르치는 기능과 기술을 습득하는 데 그치고 있어 안타까워요. 성우가 되려는 후배들이 이 직업에 대해 단순히 기능인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배우라는 점을 인식하고 들어왔으면 해요. "
-영화배우 한석규씨도 성우 출신이라면서요.
"한석규씨는 KBS 성우 공채 1년 후배로 저와는 특별한 인연이 있죠.예전에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라디오 드라마에서 제가 아들 역을 맡은 적이 있는데 이 드라마는 제가 일곱살부터 즐겨 듣던 것이라 배역을 맡았을 때 기쁨도 더 컸지요. 그런데 저의 뒤를 이어 이 역할을 맡았던 후배가 바로 한석규씨였지요. "
-한석규씨처럼 배우로 전업할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사실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 게 매력인 동시에 아쉬운 부분입니다. 성우는 얼굴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청취자들에게 더 매력적이고 신비롭게 다가갈 수 있지요. 하지만 내가 반쪽 연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들 때도 많은 게 사실입니다. "
-실제 수입은 어느 정도 됩니까.
"제 수입을 직접 밝히기는 좀 꺼려지는데요. 돈 많이 번다고 하면 세무조사 나올까봐….(웃음)수입은 경력과 배역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국내 600여명의 성우들 가운데 실제 가족 부양이 가능한 분들은 기껏해야 300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물론 스타급 성우는 연간 10억원을 넘게 벌기도 하지만 극소수에 불과하고 한달에 고작 100만원을 벌지 못해 생계 유지에 급급한 성우들도 적지 않지요. "
-꼭 해보고 싶은 배역이 있습니까.
"이미 수많은 주인공을 해봤기 때문에 사실 특별한 욕심은 없어요. 다만 좀 더 개성있고 다양한 역할을 해보고 싶을 뿐입니다. "
-앞으로의 목표나 희망은 뭔가요.
"연출ㆍ제작을 해보고 싶어요. 장기적으로는 연극이나 뮤지컬 쪽으로 진출할 생각도 갖고 있어요. 성우로서 직업적 외연을 넓히고 후배들에게 보다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해 오디오북 제작과 같은 새로운 영역도 개척해 볼 생각입니다."
글=이호기ㆍ김동욱/사진=허문찬 기자 hglee@hankyung.com
성탄절을 사흘 앞둔 지난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5층 스튜디오.녹음실 한 가운데 놓인 마이크 앞에 선 남자의 앳된 목소리가 속사포 터져나온다. 매일 오후 5시에 방영되는 KBS 2TV의 'TV유치원 파니파니'에서 콩깍지 캐릭터 '이크'를 연기하는 성우 강수진씨(43).왼손에 쥔 대본의 내용에 따라 검은 뿔테 안경을 낀 그의 표정은 개구장이처럼 변했다가 금세 화난 얼굴이 돼 주먹까지 불끈 움켜쥔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40대 남성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않을 만큼 천진하다.
강씨는 서울예전 방송연예과를 졸업하고 1988년 KBS 성우 공채 21기로 이 바닥(?)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다. 이후 줄곧 한 우물만 파 오다 2000년대 들어 케이블TV가 성장하고 일본 애니메이션 열풍이 불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슬램덩크'의 강백호,'이누야샤'의 이누야샤 등 유명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역할을 줄줄이 꿰찬 것.마니아 층이 두텁게 형성돼 있는 애니메이션 팬들에게 강씨는 이미 유명인사다. 외화 '로미오와 줄리엣'에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한 로미오 목소리를 맡기도 했다.
-20년 동안 성우만 해 오셨는데 장수 비결이 무엇인가요.
"사실 성우 중에는 반짝 스타가 거의 없습니다. 최소 10년 이상은 해야 이름이 알려지지요. 대신 한 번 이름이 알려지면 상당히 오래 가는 편입니다. '아이돌 스타'가 수시로 탄생하는 일반 배우들 세계에서는 6개월 만에도 피고 지고 하지만 성우의 세계에서는 상대적으로 그런 일이 드물죠."
-아나운서처럼 성우에겐 정확한 발음이 중요할 것 같은데요. 실생활에서도 '자장면'이라고 발음하시나요.
"성우나 아나운서처럼 대중 앞에 서는 직업인들은 우리말 보전에 큰 책임을 지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성우는 정확한 언어 전달을 목표로 하는 아나운서와는 달리 실생활에 좀더 가까운 언어를 구사합니다. 의사 전달은 물론 감정을 표현하고 개성을 창조해야 하기 때문이죠.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 '자장면'보다는 '짜장면'이 좋아요. (웃음)"
-성우는 흔히들 '천의 목소리'를 가졌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얼마나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습니까.
"대개 한 작품에서 하나의 캐릭터만 맡는 게 원칙이지만 열악한 제작 여건 때문에 1인 2~3역은 기본이고 4~5역까지 하는 경우도 꽤 있어요. 저는 특히 남자 성우로선 드물게 어린이 목소리를 잘 낸다고들 해요. 아이와 소년,청년,중년,노년 등 연령대별로 기본적인 목소리는 다 낼 수 있죠.필요하다면 태아까지도 연기해 드릴 수 있습니다. (웃음)"
-아무래도 성우가 되려면 목소리가 좋아야 하겠네요.
"과거에는 성악가처럼 중ㆍ저음의 음색을 가진 성우가 각광을 받은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좋은 목소리보다는 개성있는 음성이 오히려 환영을 받습니다. 특히 작품 속 캐릭터와 잘 어울리는 목소리라면 더욱 좋겠지요. 전통적인 의미에서 제 목소리는 좋은 편이 아닙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제 목소리에서 '의협심'이 느낄 정도로 개성이 있다고 해요. 또 어린아이 목소리를 잘 내는 덕분에 만화 주인공을 도맡는 경향이 있죠.원래 꿈은 배우였는데 성우 역시 배우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작품마다 틈만 나면 캐릭터를 연구하고 배역에 몰입해 감정을 제대로 전달하려고 애쓰는데 그런 점이 인정 받은 것 같아요. "
-목소리 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목 상태가 안 좋으면 예전엔 민간요법으로 도라지를 먹기도 했는데 평소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꾸준히 운동을 하는 등 종합적인 건강관리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스케줄이 워낙 들쭉날쭉하다보니 생활도 자칫 불규칙해지기 쉽거든요. 담배도 2년 전부터는 끊고 건강 관리에 좀더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
-성우로서 갖춰야 할 자질은 무엇입니까.
"성우를 좀더 넓은 의미에서 보면 배우와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개성있는 연기력과 성실함 등이 성우가 갖춰야 할 주요 덕목입니다. 그에 비해 오히려 목소리는 중요도 측면에서 3번째 정도로 밀려난다고 봐도 됩니다. "
-성우의 인기가 예전만은 못한 게 사실이지요.
"1970년대 라디오 시대의 성우는 그야말로 다들 최고로 선망하는 직업이었죠.그땐 또 국산 영화 출연 배우들의 목소리를 성우가 대신 연기하는 '더빙'이 일반적이고요. 게다가 1980~1990년대 TV 외화 시리즈가 인기를 끌면서 배한성 선배와 같은 '스타'까지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케이블TV를 중심으로 제작비 절감을 위해 자막을 씌우는 경우가 많아졌고 일반 대중이 오히려 여기에 익숙해지면서 성우들의 입지는 점차 좁아져 갔어요. 다행히 때맞춰 일본 애니메이션 열풍이 불면서 새로운 시장이 열렸지만 아무래도 마니아층에 집중되다보니 일반인들한테까지 어필하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
-그래서 아쉬운 점도 많으시겠어요.
"현재 일거리의 절반 이상을 애니메이션 더빙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저는 애니메이션 배역만 1000번 이상 했거든요. 게다가 애니메이션 시장의 90%는 일본이 점유하고 있어 성우 지망생 대부분이 일본 애니메이션 마니아들입니다. 애니메이션 성우만을 목표로 하는 이들은 단순히 학원에서 가르치는 기능과 기술을 습득하는 데 그치고 있어 안타까워요. 성우가 되려는 후배들이 이 직업에 대해 단순히 기능인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배우라는 점을 인식하고 들어왔으면 해요. "
-영화배우 한석규씨도 성우 출신이라면서요.
"한석규씨는 KBS 성우 공채 1년 후배로 저와는 특별한 인연이 있죠.예전에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라디오 드라마에서 제가 아들 역을 맡은 적이 있는데 이 드라마는 제가 일곱살부터 즐겨 듣던 것이라 배역을 맡았을 때 기쁨도 더 컸지요. 그런데 저의 뒤를 이어 이 역할을 맡았던 후배가 바로 한석규씨였지요. "
-한석규씨처럼 배우로 전업할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사실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 게 매력인 동시에 아쉬운 부분입니다. 성우는 얼굴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청취자들에게 더 매력적이고 신비롭게 다가갈 수 있지요. 하지만 내가 반쪽 연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들 때도 많은 게 사실입니다. "
-실제 수입은 어느 정도 됩니까.
"제 수입을 직접 밝히기는 좀 꺼려지는데요. 돈 많이 번다고 하면 세무조사 나올까봐….(웃음)수입은 경력과 배역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국내 600여명의 성우들 가운데 실제 가족 부양이 가능한 분들은 기껏해야 300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물론 스타급 성우는 연간 10억원을 넘게 벌기도 하지만 극소수에 불과하고 한달에 고작 100만원을 벌지 못해 생계 유지에 급급한 성우들도 적지 않지요. "
-꼭 해보고 싶은 배역이 있습니까.
"이미 수많은 주인공을 해봤기 때문에 사실 특별한 욕심은 없어요. 다만 좀 더 개성있고 다양한 역할을 해보고 싶을 뿐입니다. "
-앞으로의 목표나 희망은 뭔가요.
"연출ㆍ제작을 해보고 싶어요. 장기적으로는 연극이나 뮤지컬 쪽으로 진출할 생각도 갖고 있어요. 성우로서 직업적 외연을 넓히고 후배들에게 보다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해 오디오북 제작과 같은 새로운 영역도 개척해 볼 생각입니다."
글=이호기ㆍ김동욱/사진=허문찬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