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갤러리] 문정희 '비망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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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남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가난한 식사 앞에서
기도를 하고
밤이면 고요히
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구겨진 속옷을 내보이듯
매양 허물만 내보이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사랑하는 사람아
너는 내 가슴에 아직도
눈에 익은 별처럼 박혀 있고
나는 박힌 별이 돌처럼 아파서
이렇게 한 생애를 허둥거린다
-문정희 '비망록' 전문
어수선한 가운데 또 한 해가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연초 내세웠던 여러 다짐들도 속절없이 세월속에 묻히고 말았다. 유독 어두웠던 한 해 허방으로 굴러떨어진 인생들이 드글드글 많을 것이다. 지나고 나면 아쉬움과 회한만 남는다. 그래도 지금은 삶을 가다듬고 다시 일어설 준비를 해야 할 때다. 살아 있는 한 희망의 싹을 틔워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저쪽 어디에선가 어둠을 걷어내며 새벽이 파닥파닥 다가오고 있다.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