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기 위해선 신용 남겨야 기업회생 법률 잘 챙겨보면 경영권 유지ㆍ빚도 탕감 가능"
"회사는 망해도 신용을 부도내선 안 됩니다. "
최근 7년만에 활동을 재개한 '팔기회(八起會)'의 남재우 명예회장(67)은 28일 서울 종로구 팔기회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부도위기에 몰린 기업인들이 야반도주 등 극단적인 판단을 하기 쉽지만 그것 만큼 어리석은 게 없다"며 "재기를 위해서는 신용의 씨앗을 반드시 남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팔기회는 도산한 기업인들의 재기를 돕기 위해 남 명예회장 등 '망해본 경험'이 있는 기업인들을 주축으로 1992년 결성됐다. 오뚝이처럼 쓰러져도 일어선다는 뜻으로 칠전팔기(七顚八起)에서 이름을 따 온 이 모임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회원이 한때 3000여명에 달했다가 위기가 어느 정도 진정된 2002년 공식활동을 멈췄다.
긴 공백 끝에 최근 활동을 재개한 것은 극심한 경기불황 여파로 벼랑 끝에 몰린 중소기업인이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팔기회에는 모임의 취지에 공감하는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 등 전문가들이 특별회원으로 가입돼 있어 기업회생과 관련한 상담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그는 "부도로 극단적인 상황을 맞는 경영자의 심리는 당황기(부도 직전)-방황기(자금확보단계)-허탈기(부도 직후)-비난기(타인에 대한 책임전가)-자책기(자살 및 도주) 등 5단계로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라며 "보안이 유지되는 대화채널을 빨리 확보해 심리적 안정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돈줄이 막혔다는 소문이 날까봐 속앓이만 할 경우 불안정한 심리가 악화돼 자책기로 급속히 전이되고,자살이나 야반도주 같은 극단적인 결과로 이어지기 쉽다는 얘기다. 특히 통합도산법 등 기업회생 관련 법률지식을 잘 챙겨봐야 한다고 남 명예회장은 강조했다.
그는 "2006년 4월부터 통합도산법이 시행되면서 도산한 업체의 경영인도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고,개인기업도 회생절차를 신청해 빚을 탕감받을 수 있는데도 이 사실을 모르는 기업인이 많다"며 "야반도주를 하더라도 통합도산법을 1시간만 공부하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현실도피형인 야반도주는 신용을 무너뜨리기 때문에 사실상 사회적 자살이나 마찬가지라는 게 남 회장의 생각이다.
그는 "실제로 1000만원을 도피자금으로 가져간 사장이 있었는데,종업원이 횡령한 돈까지 사장한테 뒤집어 씌우면서 10억원을 빼돌린 비리경영인으로 낙인 찍힌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반면 부도에 정면으로 맞서 회사 살리기에 최선을 다한 경우에는 채권자들이 오히려 돈을 빌려다 주는 등 도움을 받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남 명예회장이 상담봉사에 애착을 갖고 있는 것은 부도와 재기를 반복한 자신의 쓰라린 경험에서 비롯됐다.
서울대 법대 출신인 그는 1980년대 초 연 매출 100억원 안팎의 양복원단 업체를 경영하다 무리한 사업확장 탓에 부도를 냈다. 종업원들의 도움으로 회사가 정상화됐지만 또다시 부도와 재기를 반복한 이후 1997년 수재를 겪으면서 사업을 완전히 접었다.
그는 "팔기회가 자금을 직접 빌려주지는 못하겠지만 기업경영에 최선을 다한 기업인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데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팔기회 사무실(02)546-7878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