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가 GM 등 미국 자동차 빅3를 중심으로 한 자동차산업을 비롯 실물경제로 빠르게 전이되고 있다. 빅3의 몰락에는 강력한 노조의 비타협적 이기주의가 한몫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국내에서도 감산에 돌입한 현대차 등이 위기 극복을 위한 비상경영 방안을 내놓았지만 노조의 반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은 김대환 전 노동부 장관(인하대 교수ㆍ경제학),남성일 서강대 경제대학원장,김동원 고려대 교수(경영학) 등 노사관계 전문가를 초청,경제위기를 맞아 노사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긴급 좌담회를 가졌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경제위기에 노조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하지만 노조는 과거의 악습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다. 기업과 경영환경은 급변하는데 노조는 변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노조도 고통을 분담해야 하는 것 아닌가.

▲김대환 전 노동부 장관 =재계가 인위적 감원을 자제하며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제 노조가 화답할 차례다. 실직은 근로자에게 가장 큰 고통이다. 어차피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이 고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생존하려면 다른 부분에서 충격을 완화할 조치가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임금 조정을 얘기할 수 있을 것이고 과거 근로자들이 경기가 좋을 때 누리던 혜택의 일부도 조정할 수 있을 것이다. 기능조정을 통해 기업이 최대한 고용을 유지하는 수단을 마련하는데 노조도 동참해야 한다. 노조가 선도적으로 나서서 협력해야 한다.

▲김동원 고려대 교수 =위기상황에서 노조가 양보교섭을 하는 것은 타당하고 필요한 선택이다. 경제 위기시 노조가 택하는 옵션은 보통 임금을 줄이고,근로시간을 줄이고,복리후생을 낮추는 것이다. 그동안 공기업과 대기업의 강성 노조가 정규직의 기득권 유지를 강화하는'패턴 세터(pattern setterㆍ선례 만들기)' 역할을 해왔는데 이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해소하면서 일자리를 나누는 게 중요하다. 최근 금속노조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해소하면서 일자리를 나누려는 움직임을 보이는데 바람직한 일이다. 구호만으로 끝나지 않고 실질적인 정책으로 이어져야 한다.

▲남성일 서강대 경제대학원장 =양보교섭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은 기본적으로 회사가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은 구체적인 내용보다 노조가 자세전환,태도변화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노사가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느냐를 모색하는 데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이를 위해 노와 사의 입장을 떠나서 얘기하고 해결방안을 찾자는 자세전환이 전개돼야 한다.



▲사회 =현대자동차의 비상경영 방안에 대해 노조가 반발하고 있다. '정신나간 노조'란 지적도 많다. 노조가 왜 바뀌지 않는다고 보는가.

▲남 원장 =현대차 노조가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몰라서 그런 것이고,다른 하나는 알면서도 전략적으로 그런 행동을 취한다고 볼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자동차는 공급과잉 상태로 선진국의 자동차회사들도 예외없이 감산을 하고 있다. 외국에선 비상경영이라는 게 말할 필요도 없이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런 위기상황의 실상을 안다면 '비상경영 방안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든지 '사측이 사전협의를 안 했다'는 이유로 반대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노조가 이런 위기상황을 알면서도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런 전략을 택했다면 매우 불행한 일이다.

▲김 교수 =경제위기 상황에서 노사가 힘겨루기를 하는 것은 가장 하책(下策)이다. 경제위기가 워낙 심각해 어느 자동차회사가 먼저 파산이나 도산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한국 자동차회사의 노조들도 현재는 반발하지만 살기 위해선 언젠가는 비상경영대책을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노조 측이 단체협상 구절을 문제삼기보다는 전향적 자세를 갖는 게 바람직하다. 과다한 전임자 문제 등은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다만 사측이 좀더 정교하게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점은 아쉽다.

▲김 전 장관 =현대차 노조는 회사 측의 비상경영안을 노조에 대한 도전이라고 받아들이는 듯하다. 하지만 근로자 가운데도 비상경영의 취지에 동감하는 움직임이 있다. 이 시점에서 노조는 힘겨루기보다는 선도적,적극적으로 (회사 측의 제의를) 받아들이는 게 필요하다. 비상방안에 대해 노조의 반발은 지지받기 힘들다. 노조가 좀더 솔직하고 정직하게 선도적으로 동참하고 협력하는 자세를 보여준다면 현대차 노조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 인식도 바뀌게 될 것이다. 노조의 정치화로 불필요한 사회비용이 초래되고 있는데 이런 거품을 빼고 노사관계를 진행해야 한다.

▲사회 =현대차의 단협을 살펴보면 도요타나 GM 등에 비해 경영권 침해 요소가 많다. 특히 고용과 관련된 과보호 조항이 많아 고용경색을 가져온다는 지적도 많다.

▲김 교수 =미국이나 일본과 비교하면 현대차 노조의 단체협약이 경영권 침해라고 볼 수 있지만 스웨덴 독일에 비하면 덜 경직적이라고 본다. 하지만 현재의 단체협약과 노사관계 시스템은 수십 년 전에 성립된 것인데 경기에 따라 자율조정 기능이 있다고 생각한다. 불경기 때는 노조 측의 기득권이 없어지게 돼 있는 만큼 노사 담합 구조가 개선될 것으로 본다. 전임자가 250명이나 되고 지나친 복리후생이나 노조가 혼류생산을 못하게 하는 등의 불합리는 개선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 전 장관 =김 교수가 현대차 단협이 스웨덴이나 독일에 비하면 덜 경직적이라고 보지만 사실 우리가 서구의 공동결정제도를 너무 경직적으로 이해하는 측면이 있다. 유럽 회사들의 노사공동결정제도의 실제 운영과정을 보면 노사 동수 위원회라도 사측이 최종 결정을 하는 방식으로 유연성이 발휘되도록 돼 있다. 단체협약은 기업이 외부 경제ㆍ사회 여건에 따라 유연하게 작동해야 의미가 있다. 우리의 경우 유연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근로자 지위가 악화되는 부분은 새 단체협약 아니면 안되는데 노동운동 과정에서 한번 얻은 것을 포기하면 패배라고 생각하는 경직성이 노조에 있는 게 사실이다. 특히 (노조의 힘이 센) 대기업이나 공공부문에서 바꾸기가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기존 단협을 노사가 열린 자세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노조가 사회에 영향을 미친 것처럼 노조도 사회의 영향을 받아야 한다.

▲남 원장 =비상경영을 통해 감산이나 차종변경을 하더라도 다른 나라는 유연하게 처리하는데 우리는 단체협약의 경직성에 의해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단협 때문에 경쟁력이 저하되는 부문을 고민해야 한다. 현대차의 단협에 경영사항 침해조항이 많은 게 사실이다. 신규 모델을 라인에 투입하는 것을 노사위원회에서 심의해야 하고 모델 교체도 노사공동위원회에서 결정하고 있다. 전환배치도 노사공동위원회 몫이고 해외 현지공장을 짓거나 폐쇄하는 문제,해외 공장 인원투입 문제까지 노사공동위원회가 관여한다. 그런 점에서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는 선진국 경쟁기업과 경쟁이 되겠는가. 그런 부분이 글로벌한 자동차 산업의 구조전환기에 발목을 잡는 요인이다.

▲사회 =미국 빅3가 파산위기에 몰렸다. 경영진의 전략 부족도 있지만 노조의 강력한 권력 때문이란 지적이 더 많다.

▲남 원장 =빅3의 위기는 경영진의 안일한 단기 업적주의와 자동차산업의 특성이 노조의 강력한 권력과 어우러져 심화된 측면이 있다. 경영진이 노조의 강한 요구에 저항하지 않았다. 원칙을 지키기보다 우선 (노조의 요구를) 받아주고 파업 없이 넘어가는 게 좋다는 인식이 많았다. 그게 40년 지속되고 자동차시장이 글로벌 슬럼프에 빠지면서 위기를 맞은 것이다.

▲김 교수 =노사관계가 나빠져도 회사가 양보해선 안 될 선을 그어놓고 원칙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의견이 달라도 존경할 만한 상대가 돼야 한다. 회사 측이 원칙 없이 단기적 목적 달성을 위해 노조와 타협하면 노조는 겉으로는 좋아하지만 속으로는 경멸한다. 원칙경영이 단기적으론 손해라도 장기적으론 이익이다. 우리의 경우 노사 간 신뢰가 너무 약해 힘겨루기가 만연하고 노조도 최대한 받을수 있을 때 받자는 전략으로 나간다. 노사 양측이 하루살이식 사고방식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정리=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