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포켓볼을 치고 미니 바(bar)에서 와인을 마시고 영화도 보면서 밤새도록 수다 떨 거예요. "

파자마 차림으로 모텔 룸을 빙 둘러본 대학생 강혜정씨(21)는 들떠서 말했다. 115㎡(35평) 규모의 큰 방안에는 그가 말한 장비가 완비돼 있다.

함께 온 친구들과 고교 시절 교복으로 갈아입고 당구 큐대를 집어들었다.

강씨는 "하룻밤 묵으며 모든 것을 이용하는 데 1인당 4만5000원만 내면 된다"며 "특급호텔 못지않은 시설에 숙박료는 3분의 1 수준이라 돈 없는 대학생들이 연말 파티하기엔 딱"이라며 즐거워했다.

침침한 조명에 음침한 분위기를 자아내던 모텔들이 최근 '부티크 모텔'로 거듭나며 파티 공간으로 각광받고 있다. 부티크 모텔이란 대형 PDP,당구대,수영장,신종 게임기 등을 갖춘 신개념 멀티플렉스형 숙박업소로 웬만한 호텔 뺨치는 인테리어와 고급시설을 자랑한다.

호텔보다 저렴한 숙박료로 다양한 놀이ㆍ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는 이점에 대학생은 물론 젊은 직장인들도 모텔 문을 두드리고 있다.

'오빠 못 믿어? 손만 잡고 얘기하자'며 늦은 밤 모텔 앞에서 여자친구와 실랑이를 벌이던 '오빠'들의 말이 '씨'가 된 셈이다.

강씨가 묵은 방은 서울 역삼동 젤리모텔 '903호'.모텔 파티족들에겐 그냥 '903호'로 통한다. 포켓당구대,대형 스크린,500만원 상당의 거품 욕조기,프랑스산 아로마 촛불 등이 구비된 룸(82㎡)도 있다.

김광섭 젤리모텔 매니저는 "스파,차이나룸 등 나머지 15개 테마로 꾸며진 28개 룸이 모두 연말까지 예약이 꽉 찼다"고 말했다. 숙박료는 룸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10만~20만원 사이다.

종로의 부티크 모텔 '쉴(Sheel)'도 인기다. 총 58실을 갖춘 쉴은 각 방 한가운데 동그랗게 구멍을 내고 4명 정도가 둘러앉을 수 있는 테이블을 설치,미니바를 연상시킨다.

브라운 톤의 커튼과 앤티크 식기로 꾸며진 인도풍 룸 등 다양한 컨셉트 룸이 있다. 숙박료는 평일 7만5000원,금요일과 주말엔 1만~2만원 더 비싸다. 수원시 구운동에 있는 '메이트 호텔'은 작은 수영장이 딸린 객실(1박ㆍ19만원)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곳 13층엔 복층식 특실(29만원)이 3개 있다.

이 같은 모텔의 변신은 젊은 층에게 모텔이 더 이상 '금기의 공간'이 아니기 때문.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를 맞아 교복파티,파자마파티 등이 성행한다. 또 대학가 주변 모텔은 시험기간이면 시험공부 장소로도 각광받고 있다.

장성호 기자 ja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