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대금 납부조건 완화못해"…사실상 최후통첩
한화 "진일보 했지만 추가협의 필요" 다시 고민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M&A) 조건을 완화해 달라는 한화그룹의 요청에 대해 산업은행이 조건부 수용이라는 카드를 내놨다. 본계약 체결 시점을 한 달 미뤄주겠지만 대금 완납 시점은 연장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앞으로 한 달 후 본계약을 맺고 내년 3월30일까지 인수대금 6조여원을 내지 않으면 계약을 파기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한화는 "산은의 방침은 진일보한 것이지만 난관을 풀기 위해서는 추가 협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 때문에 대우조선 M&A 성사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해 보인다. 일각에서는 산은의 이번 방침은 사실상 최후통첩이나 다를 바 없고 한화는 남은 기간 자금 마련이 쉽지 않기 때문에 계약 파기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더 높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산은, 한화의 요구 한 가지만 수용

㈜한화 한화석유화학 한화건설 등 대우조선 인수 컨소시엄 3사는 지난 26일 긴급 이사회를 열어 대우조선 인수 조건과 관련한 요구사항을 결의했다. 본계약 체결 시점을 늦춰주고,인수대금 납입을 최장 2~3년간 분납토록 해 달라는 것이 한화 측의 요청이었다. 이에 대해 산은은 본계약 체결 시점 연기라는 한 가지만 수용했다. 나머지는 모두 거부했다.

본계약 체결 시점 연기 역시 엄밀히 말하면 한화 측의 요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한화는 "본계약 일정을 3~4주의 세부실사를 마친 이후로 미뤄 달라"고 요청했지만 산은은 "실사와 본계약 체결과는 관련이 없으며 다만 대우조선 M&A가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해 한 달간 연장해줬다"고 설명했다.

한대우 산은 기업금융4실장은 "자칫 한화 요구를 받아들일 경우 특혜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수대금 납입 시점을 늦춰주는 것은 MOU의 핵심 사항을 변경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화 측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는 것이 산은의 입장이다.
"대우조선 매각, 한화에 특혜줄 수 없다"
◆한화 "인수조건 바뀐 게 없다"

산은의 조건부 본계약 연기 입장을 전해들은 한화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26일 3개 계열사가 이사회 결의를 통해 배수진을 쳤지만 얻은 게 하나도 없다는 분위기다. 본계약 한 달 연기로 시간은 벌었지만 현재의 자금시장 환경에서 산은이 못박은 내년 3월30일까지 인수자금 완납을 충족시킬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설명이다. 어쨌든 대우조선 인수 협상을 위해 산은 측에 돌렸던 '공'은 다시 한화 측에 넘어왔다.

한화 고위 관계자는 "산은이 방침을 밝힌 만큼 당사자간 추가협의가 필요할 것으로 본다"며 원칙적 입장을 밝혔다. 본계약 시기만 연기됐을 뿐 대우조선의 정밀실사 가능 여부와 산은측이 제시한 한화그룹의 보유자산 매입 등이 실제로 어느 정도 이뤄질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계약파기 수순밟나

산은이 본계약 시점을 한 달 연기했지만 M&A 파기 가능성은 여전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산은이 지난달 14일 체결한 양해각서(MOU) 조항을 준수할 것이란 원칙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한화가 법적 구속력이 있는 이사회 결의를 통해 배수진을 친 데 대해 산은이 원칙 고수 입장으로 맞받아치면서 한화는 더욱 궁지로 내몰린 형국이다.

한화는 현재 인수자금 마련 실패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외환은행 하나은행 농협 등 MOU를 체결하기 전 6500억원씩 자금을 대기로 확약했던 금융기관들이 자금 사정 악화를 이유로 모두 발을 뺐고 인수 참여를 희망했던 국내외 전략적 투자자(FI)들도 협상 자체를 꺼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산은이 인수자금 지급 조건 완화를 거부,한화는 보유자산의 무조건 매각 빼고는 선택할 카드가 없어졌다. 그렇다고 대우조선 인수 강행을 위해 보유자산 및 우량 계열사를 시장에 내놓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한화 관계자는 "그룹 내부에서 대우조선 인수에 대한 회의론이 강하게 일고 있다"며 "가격이 폭락한 현 시점에서 대우조선 인수대금을 위해 보유자산 및 우량 자산을 팔 수는 없다"고 말했다.

산은은 그러나 남은 기간 중 한화가 최선의 자구 노력을 기울인다면 산은이 자산 매입 등의 방식으로 지원하는 만큼 M&A가 성사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손성태/박준동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