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오 국회의장이 29일 여야 모두의 체면을 살려주면서 경호권 발동에 대한 자신의 정치적 부담도 덜어내는 묘안을 짜냈다.

김 의장은 이날 부산 롯데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연내에는 여야가 합의한 53개 민생법안만 처리하고 △쟁점법안은 임시국회 마지막날인 내년 1월8일까지 추가 협의하되 △그 때까지 대화가 안 되면 직권상정을 포함해 결단을 내리겠다는 중재안을 내놨다. 그러면서 본회의장 점거를 해제하라고 경고했다.

지난 18일 한나라당의 한ㆍ미 FTA 비준동의안 외통위 단독 상정 이후 여야 관계는 계속 꼬여만 왔다. 여야 지도부 모두 상대방이 받아들이기 힘든 강경한 입장을 내놓으며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넜다.

한나라당은 핵심 법안을 반드시 연내에 처리하겠다는 강경입장을 취했고,민주당은 이른바 4대 악법 철회 없이는 대화에 나설 수 없다는 강공 카드를 꺼냈다.

김 의장은 연내에는 합의된 법안만 처리하자는 중재안을 통해 여야 스스로 꼬아놓은 매듭을 풀기 위한 시도에 나선 셈이다.

동시에 그는 민생법안-쟁점법안의 분리 처리라는 대안을 통해 '경호권 발동'의 정치적 부담도 해결했다. 만약 민주당이 점거를 풀지 않아 경호권을 발동하더라도 쟁점법안의 강행처리가 아니라 민생법안의 합의처리를 위한 것이라는 모양새를 연출,여론악화를 막겠다는 계산이다. 이 경우 민주당의 본회의장 점거 명분도 상당히 희석된다.

이에 여야는 일단 부정적 입장을 내놨다. 한나라당은 "금년 내에 혼란의 종지부를 찍어야한다"고 했고 민주당은 "직권상정을 위한 수순"이라며 비난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국회의장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을 지킨 셈이다. 하지만 직권상정의 가능성을 남겨놓음으로써 향후 여권 내에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