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보험사 서로 부담 떠넘겨

C&중공업에 대한 자금 지원이 부결된 것은 선수금 환급보증(RG)을 놓고 주채권은행인 우리은행과 최대 채권금융사인 메리츠화재가 이견을 좁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RG는 선주가 계약에 따라 선박 건조에 필요한 선수금을 지급하는 대신 조선사의 계약 이행을 담보하고 만약의 경우 선수금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안전장치다. 금융회사는 조선사로부터 수수료를 받은 뒤 RG를 발급하고 조선사는 다시 이를 선주사에 제공하는 것이다.

은행권에서는 RG 역시 지급 보증 채권으로 총 여신에 포함되는 만큼 신규 자금 지원 과정에서도 채권비율에 따른 배분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우리은행 고위 관계자는 "이 원칙이 무너질 경우 다른 조선업체는 물론 향후 모든 워크아웃 대상 기업에 대해서도 일일이 이견을 조정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메리츠화재는 "지급 보증 문제가 워크아웃 지속 여부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아닌 만큼 C& 정상화를 위한 신규 자금 지원은 어디까지나 은행권 몫"이라는 입장이다. 더구나 메리츠화재의 경우 의결권 21.5%를 가진 수출보험공사가 법적으로 대출을 금지하고 있어 수보의 채권 부담까지 떠안게 될 상황이다. 긴급 운영자금 150억원은 물론 향후 필요한 시설자금 1450억원의 76%를 지원하는 데 대한 부담도 감당할 수 없는 입장이다.

메리츠화재로서는 RG 보험의 상당액이 재보험에 가입돼 있어 워크아웃이 무산되더라도 200억~300억원의 손실만 입는다. 이 같은 복잡한 사정으로 지난 3일 워크아웃 개시 결정 이후 한 달 가까운 기간에 3차례나 채권단회의가 열렸지만 양측의 입장 차이는 전혀 좁혀지지 않았다.

우리은행은 일단 채권단의 자금 지원안이 부결됐지만 내년 2월13일까지 채무 유예 등 워크아웃 조항은 유효하다며 실사 작업을 우선 진행하겠다는 계획이다. 그 결과 C&중공업의 회생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판정나면 워크아웃을 중단하고 법정관리 절차에 착수한다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RG 채권의 해석 문제가 내년 초 본격화할 조선업계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핵심 이슈로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며 "은행과 보험사들이 접점을 찾지 못할 경우 C&은 물론 조선업체들의 대거 청산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심기/김현석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