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강경입장에 벼랑끝 몰려…인수 회의론도 부상
대우조선 노조는 "분할납부·시한연장 해주면 특혜"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려던 한화그룹이 깊은 수렁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매각 주체인 산업은행과의 협상은 갈수록 안개속이고,우선협상자로 선정된 이후 그룹 신용및 자산가치 하락으로 본계약 도장도 찍기 전에 '승자의 저주'에 시달리고 있다.

㈜한화,한화석유화학,한화건설 등 3개사가 긴급 이사회를 소집,배수진을 치고 재협상을 결의했지만 산은의 강경방침을 확인했을 뿐이다. 산은은 오히려 특혜불가론을 내세워 "보유자산과 계열사 매각 등으로 인수 의지와 성의를 보이라"며 한화를 몰아세우고 있다.

'5대 딜레마',돌파구가 없다

산은이 내년 3월 30일 인수대금 납부 시기를 확실히 못박으면서 한화는 더욱 궁지에 내몰리고 있다. 특히 산은이 보유자산및 계열사 매각에 협조 의사를 밝히면서 딜레마에 빠졌다.

한화 고위 관계자는 "한화가 대우조선 인수자금 마련을 위해 자구노력을 하지 않은 게 아니라,보유자산 가격이 폭락해 못했을 뿐"이라며 "산은이 어떤 조건으로 보유자산을 매입해 준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의문을 표시했다.

한화는 인수자금 마련을 위해 우량 계열사까지 매각하는 방안은 아직 검토하지 않고 있다. 이 관계자는 "대우조선을 싯가의 4배정도로 사기 위해 우량 계열사를 헐값에 팔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당초 계획한 내부자금의 공백을 메우고 시장에 대우조선 인수 의지를 보이기 위해서는 1~2개 계열사 매각이 불가피해진 상황이다. 한화는 산은측에 제출한 인수제안서에 4조5000억여원의 내부자금 조달계획을 적어냈다. 그룹이 보유한 현금중에서 1조원을 충당하고,대한생명 주식 21%(주당 1만원씩 1조5000억여원),장교동 사옥 및 무교동 건물(1조여원)과 군자 매립지(1조여원)를 처분하면 자금 조달에는 문제가 없다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대한생명 지분과 보유건물 등은 헐값에라도 매수자를 찾기 힘들고,군자 매립지의 경우 5600억원 현금보상을 받는데 그쳤다.

현재로선 외부자금 조달은 고사하고 일부 계열사의 매각을 제외하면 인수대금의 절반인 3조원을 충당할 방법이 없는 셈이다. 본계약이 한달정도 늦춰졌지만 대우정밀 실사가 가능할는지도 불투명하다.

대우조선 노조는 29일 기자회견을 갖고 "산은이 한화의 인수대금 분할납부와 납부시한 연장 요구를 들어주는 것은 명백한 특혜"라고 주장했다. 노조는 또 산은이 본계약 연기를 결정한 것에 대해서도 '원칙없는 매각'이라며 반발,향후 대우조선 실사 과정이 험난할 것임을 예고했다.

◆한화의 선택은?

한화는 일단 내달 30일 본계약 시점까지 산은과의 협상에 최선을 다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산은이 인수자금 납부 연기나 분할납부 등을 허용하지 않는 한 돌파구가 없다는 게 문제다.

한화 내부에서는 대우조선 인수와 관련,강한 회의론이 대두되고 있다. 지난 26일 3개 계열사 이사회에 참석한 사내외 이사들은 "조선경기 급랭 등으로 대우조선을 인수해도 그룹에 두고두고 재앙이 될 것"이라며 경영진을 강하게 질타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화는 내년 금융환경이 다소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3월30일까지 인수대금을 최종납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 상태다. 따라서 앞으로 산은과의 협상은 인수대금 납부 조건완화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또 빠른 시간내에 대우조선 해양 실사에 착수해 현재 3%인 가격조정폭의 수정도 추가 요구할 방침이다.

한화 고위 관계자는 "아직 협상여지가 남아 있어 섣불리 최종선택을 얘기하기 힘들다"면서도 "산은이 기존 입장을 그대로 고수한다면 한화로서는 대우조선 인수를 포기하고,몰치금 반환소송에 나설 수 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본계약을 한달여 앞둔 시점에서 양자간 원활한 협상을 위해서는 매각 주체인 산은이 대우조선 실사에 착수할 제반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게 한화 주장이다.

손성태/이정호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