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증시가 연초보다 거의 '반토막' 수준으로 추락한 채 저물고 있다. 굴곡 많았던 우리 증시에서 설사 주가 반토막이 낯선 일은 아니라고 쳐도 올해 투자자들은 어느 때보다 난감하고 황당한 것이 사실이다. 최근 5년 동안 상승장을 봐온 데다 새 정부가 출범해 올해 역시 낙관무드가 팽배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2000을 넘던 코스피지수가 1년도 안 돼 곤두박질친 초라한 주가 성적표를 받아들고 보니 10여년 전 외환위기를 모범적으로 극복해냈다는 자부심과 교훈도 그저 자만이 아니었던가 반성되기도 한다. 우리 경제에 여전히 뿌리 깊은 취약점이 많다는 생각에서다.

증시는 과거 '천수답'이나 '냄비'로 불렸던 것처럼 불확실한 루머와 소문에 일희일비하며 휘둘리는 구태의연한 체질을 개선하지 못했다. 투자자들의 가벼움도 과거 그대로였다.

글로벌 위기라지만 정부와 금융감독당국은 허둥대며 손발을 맞추지 못했고 경쟁력이 강해졌다고 자신했던 상장사들 역시 주가 급락에 맥을 추지 못했던 것이 올해 1년이다.

무너진 것은 주가만이 아니다. 증시 신뢰도 붕괴됐다. 주가는 시간과의 싸움일 뿐 다시 회복될 것이란 기대가 크지만 신뢰를 되찾는 데는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지 걱정된다.

전문가들 역시 할 말이 별로 없다. 코앞의 위기를 감지하지 못하고 정반대의 분석을 내놓은 경우도 적지 않았다. 2개월 전만 해도 상당수 경제학자들은 심각한 디플레이션 위협에 직면했던 우리 경제의 최대문제를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잘못 진단하는 오류를 범했다. '미네르바'라는 한 온라인 논객이 '연내 코스피지수 500'이란 저주에 가까운 독설을 제기했던 것도 이 같은 신뢰와 권위의 상실이 배경이 됐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번 위기는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진행되는 초유의 사태다. 그런 만큼 논점과 주장이 다양해 한동안 투자자들은 물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상당한 혼란이 예상된다. 한 증권 전문가는 "향후 경제와 증시가 '시계제로'인 상황이지만 과거 외환위기에 이어 다시 우리를 되돌아보고 교훈을 얻는다는 자세로 대처한다면 기회는 반드시 찾아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위기는 기회'라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새해를 맞자.


백광엽 증권부 기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