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채권 발행 등 주관사 순위, 외국계 증권사에 크게 밀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국내 기업들의 외화자금 조달이 작년의 절반 수준에 머물고 기업공개(IPO)시장도 2003년 이후 5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급감했다.

이런 가운데 국내 기업의 해외채권 발행과 국내 주식의 모집·매출은 여전히 외국계 증권사가 장악하고 있어 내년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을 앞둔 한국 IB(투자은행)의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국내 기업의 외화자금 조달 절반으로

29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 국내 기업들이 공모시장에서 조달한 외화자금은 237억달러로 작년(460억달러)보다 48.3%나 감소했다.

이 중 해외에서 발행한 외화채권이 103억500만달러로 53.2% 감소했으며 여러 은행으로 구성된 차관단이 공통의 조건으로 일정 금액을 차입자에게 빌려주는 외화표시 신디케이트론도 51.9% 줄었다. 또 CB(전환사채)나 BW(신주인수권부사채) 등을 포함한 주식연계채권은 82.3%나 급감했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가 고조됐던 4분기에는 외화자금 조달 규모가 6억4200만달러에 그쳐 작년 4분기(62억5200만달러)보다 89.7%나 줄었다.

이같은 외화자금 조달 급감은 5년만기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가산금리가 사상 최고치까지 치솟는 등 글로벌 투자자들의 안전자산 선호가 심화되며 한국 등 이머징마켓 채권이 외면당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올 국내 원화자금 조달도 62조4070억원으로 작년보다 9.2% 감소했다. 원화 회사채나 주식연계채권은 늘었으나 IPO나 일반공모 및 블록트레이딩이 급감했다.

올 증시침체로 IPO시장은 8100억원(44건)에 그쳐,작년 1조8420억원(68건) 대비 56.03% 감소했다. 이는 2003년(6600억원 72건) 이후 최저 수준이다. 블룸버그 관계자는 "국내 뿐 아니라 글로벌 증시 침체로 인해 일본의 IPO시장은 전년 대비 80%,중국과 홍콩도 각각 76.8%,78%나 감소했다"고 말했다.

◆국내 증권사 위상은 제자리

외국계 IB들이 금융위기로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는 속에서도 국내 주식 모집·매출 등은 외국계가 여전히 독식하고 있다. 글로벌IB의 벽을 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IPO와 일반공모,5000만달러 이상의 블록트레이드(대량매매)를 포함한주식 모집·매출 분야에서 크레디트스위스(CS)는 올해도 22.8%(7220억원)를 차지,1위를 지켰다. 씨티그룹도 16.2%(5130억원)로 작년과 같은 2위에 올랐다.



이어 JP모간(12.6%)과 UBS(12.0%)가 각각 3위와 4위를 차지했다. 국내에서는 우리투자증권이 7.0%로 간신히 5위권에 포함됐다. 지난해 3위로 토종 증권사의 자존심을 지켜준 삼성증권은 12위로 9계단이나 밀려났다.

해외 발행채권 주관사 순위에서도 HSBC 메릴린치 도이치은행 씨티그룹 등 외국계들이 10위권을 독차지했다. 유진투자증권과 우리투자증권 등 2개사만 20위권 내에 겨우 진입했다.

다만 IPO시장에서 대우증권이 시장점유율 18.6%(1510억원)로 1위를 차지했으며 한국투자 우리투자 동양종금 현대증권이 뒤를 이었다. ABS(자산유동화증권)를 포함한 원화표시채권 시장도 지난해 3위였던 우리투자증권이 1위로 도약했으며 동양종금증권도 8위에서 2위로 6계단 올라왔다.

이건표 대우증권 IB사업추진단장은 "해외시장은 글로벌 네트워크가 강한 외국계 회사에 밀리는 게 사실"이라며 "해외 기업의 국내 상장 등 국내 시장을 확고히 지켜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재칠 증권연구원 연구위원은 "해외시장에서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자기자본을 늘리고 트랙레코드(경험)를 쌓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