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지금은 위기 이후를 구상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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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프랑스인들은 올해를 상징하는 단어로 '서브프라임(subprime)'을 꼽았다고 한다. '서브프라임'이란 말은 우리에게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것이 상징하는 세계경제 위기로 그 누구보다도 혹독한 고난을 겪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두어 달 전 외화 이탈이 외환위기 사태 직전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오더니 최근엔 가계 소비가 외환위기 직전과 흡사한 양상으로 감소했다는,그래서 정부 정책의 경기부양 효과가 떨어진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과 주식 시장뿐 아니라 건설,제조,유통 등 실물 경제마저 타격을 입기 시작했다고 한다. 경제학 교수들로부터 F학점을 받은 경제 장관들이 쏟아 놓은 정책들은 효험이 없고,국회는 '입법 전쟁' 벌이느라 경제 챙길 겨를이 없다. 가장 심한 타격을 받는 것은 서민들이고 중소기업들이다. 이래저래 국민들만 좌불안석,그나마 가지고 있던 지갑이라도 틀어 쥘 수밖에 없다.
역사의 반복을 믿는 것은 너무 순진한 일이다. 그러나 역사에는 양상은 다르지만 매우 유사한 패턴을 그리며 반복되는 일들이 많다. 경제의 글로벌화로 위기의 사이클은 훨씬 더 불확실해졌지만,지진이나 쓰나미처럼 요동을 치는 데도 어떤 패턴이 있다. 미국발 금융 위기의 진앙지인 서브프라임 사태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전 세계를 강타하는 과정은,아직 충분히 구명되지는 못했지만,위기가 이미 과거로부터 발단했음을 말해 준다. 다만 받아들이기 싫은 시나리오였거나 그것을 경고할 예지력과 용기가 충분치 못했을 뿐이다. 역사에서 배우는 또 하나의 교훈은 모든 위기에는 반드시 끝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영원한 위기란 없고 위기는 대개 단기였다. 'IMF 위기'는 조기 졸업론이 대두됐을 때 이미 그 끝을 보였다. 다만 오전에 오후 날씨를 예상 못하듯 인간의 예측 능력이 치명적 한계를 지녔거나,목전의 현안에 급급한 나머지 훗날을 대비할 겨를이 없었을 뿐이다.
이젠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위기의 극복은 우리 주변 어딘가에 발아한 위기의 씨앗을 찾는 데서 이미 시작됐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위기는 그 이후가 더 중요하다. 위기에 끝이 있다면 그 이후에 대비해 미리 미리 대책을 구상해 둘 뿐 아니라 과감하게 미래 투자를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역사에서 배운다. 외환위기 때 나타난 징후들이 오늘 다시 출현했다는 사실에 우리는 경악한다. 정부는 물론 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그때와는 다르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다르다. 다르다고 믿고 싶다. 그러나 그 다름이 그나마 외환위기를 해피 엔딩으로 이끈 비결이었다면 안심은 금물이다. 사실 그때는 전례 없이 어려웠지만 전 국민적 금 모으기 운동 등 우리를 일어서게 만드는 힘과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우리는 한국이 그리 쉽게 무너질 나라가 아니라는 데 동의하지만,위기를 극복하는 데 '태안의 기적' 같은 일이 좀처럼 생길 기미가 없어 조바심할 따름이다.
또 한 해가 간다. 세월이 지나도 우리는 여전히 역사의 미성년이다. 그토록 쓰라린 환란을 겪고도 아직 배우지 못한 게 있다면,위기 그 다음에 대비하는 비결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은 위기에 잘 대처하지 못했거나 위기 자체를 넘어서지 못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위기 이후를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공교롭게도 지난 김대중ㆍ노무현 정권 10년을 '잃어버린 10년'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물론 위기 후 관리를 위한 노력이 전혀 없지는 않다. 대기업의 경제연구소들은 이미 위기 후 투자 구상을 짜느라 여념이 없다. 그러나 정부는 어떤가. 정부는 위기 이후를 위한 미래 투자는커녕 현재의 위기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한다. 하물며 파당들의 전쟁터로 전락한 국회에 대해서는 더 이상 할 말을 잃는다.
프랑스인들은 올해를 상징하는 단어로 '서브프라임(subprime)'을 꼽았다고 한다. '서브프라임'이란 말은 우리에게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것이 상징하는 세계경제 위기로 그 누구보다도 혹독한 고난을 겪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두어 달 전 외화 이탈이 외환위기 사태 직전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오더니 최근엔 가계 소비가 외환위기 직전과 흡사한 양상으로 감소했다는,그래서 정부 정책의 경기부양 효과가 떨어진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과 주식 시장뿐 아니라 건설,제조,유통 등 실물 경제마저 타격을 입기 시작했다고 한다. 경제학 교수들로부터 F학점을 받은 경제 장관들이 쏟아 놓은 정책들은 효험이 없고,국회는 '입법 전쟁' 벌이느라 경제 챙길 겨를이 없다. 가장 심한 타격을 받는 것은 서민들이고 중소기업들이다. 이래저래 국민들만 좌불안석,그나마 가지고 있던 지갑이라도 틀어 쥘 수밖에 없다.
역사의 반복을 믿는 것은 너무 순진한 일이다. 그러나 역사에는 양상은 다르지만 매우 유사한 패턴을 그리며 반복되는 일들이 많다. 경제의 글로벌화로 위기의 사이클은 훨씬 더 불확실해졌지만,지진이나 쓰나미처럼 요동을 치는 데도 어떤 패턴이 있다. 미국발 금융 위기의 진앙지인 서브프라임 사태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전 세계를 강타하는 과정은,아직 충분히 구명되지는 못했지만,위기가 이미 과거로부터 발단했음을 말해 준다. 다만 받아들이기 싫은 시나리오였거나 그것을 경고할 예지력과 용기가 충분치 못했을 뿐이다. 역사에서 배우는 또 하나의 교훈은 모든 위기에는 반드시 끝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영원한 위기란 없고 위기는 대개 단기였다. 'IMF 위기'는 조기 졸업론이 대두됐을 때 이미 그 끝을 보였다. 다만 오전에 오후 날씨를 예상 못하듯 인간의 예측 능력이 치명적 한계를 지녔거나,목전의 현안에 급급한 나머지 훗날을 대비할 겨를이 없었을 뿐이다.
이젠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위기의 극복은 우리 주변 어딘가에 발아한 위기의 씨앗을 찾는 데서 이미 시작됐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위기는 그 이후가 더 중요하다. 위기에 끝이 있다면 그 이후에 대비해 미리 미리 대책을 구상해 둘 뿐 아니라 과감하게 미래 투자를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역사에서 배운다. 외환위기 때 나타난 징후들이 오늘 다시 출현했다는 사실에 우리는 경악한다. 정부는 물론 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그때와는 다르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다르다. 다르다고 믿고 싶다. 그러나 그 다름이 그나마 외환위기를 해피 엔딩으로 이끈 비결이었다면 안심은 금물이다. 사실 그때는 전례 없이 어려웠지만 전 국민적 금 모으기 운동 등 우리를 일어서게 만드는 힘과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우리는 한국이 그리 쉽게 무너질 나라가 아니라는 데 동의하지만,위기를 극복하는 데 '태안의 기적' 같은 일이 좀처럼 생길 기미가 없어 조바심할 따름이다.
또 한 해가 간다. 세월이 지나도 우리는 여전히 역사의 미성년이다. 그토록 쓰라린 환란을 겪고도 아직 배우지 못한 게 있다면,위기 그 다음에 대비하는 비결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은 위기에 잘 대처하지 못했거나 위기 자체를 넘어서지 못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위기 이후를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공교롭게도 지난 김대중ㆍ노무현 정권 10년을 '잃어버린 10년'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물론 위기 후 관리를 위한 노력이 전혀 없지는 않다. 대기업의 경제연구소들은 이미 위기 후 투자 구상을 짜느라 여념이 없다. 그러나 정부는 어떤가. 정부는 위기 이후를 위한 미래 투자는커녕 현재의 위기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한다. 하물며 파당들의 전쟁터로 전락한 국회에 대해서는 더 이상 할 말을 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