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환익 <KOTRA 사장>

한 해가 암울하게 끝나고 있다. 그런데 내년은 더 힘들다고 하니 이때면 쏟아져 나오는 새해의 희망 이야기가 공허하게 들린다. 항상 두 자릿수 이상의 증가율로 늘어만 가는 것으로 알았던 우리 수출이 두 자리 비율로 감소하고,1998년 이후 20년간 차곡차곡 쌓여오던 무역흑자도 금년에는 적자로 돌아섰다. 우리 경제가 어려울 때 항상 구원투수 역할을 하던 수출이다. 언제쯤 다시 활력을 찾아서 강속구를 뿌려낼까.

현재 그나마 수출 주문이 오는 곳은 환율 효과가 큰 일본과 그래도 제일 큰 시장인 중국,비교적 금융위기에서 벗어나 있고 개발수요가 있는 동남아,중남미,중동,러시아 등이다. 하지만 미국,유럽 등 큰 시장에서의 주문이 크게 감소하면서 수출이 두 자릿수로 줄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상황이 추세일까. 설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지난 몇 달,특히 9월 중순 리먼브러더스 파산신청 이후 세계의 시장을 지배한 것은 '탐욕의 심리'가 걷힌 후에 오는 '공포의 심리'였다. 미국이나 유럽의 구매자들은 소비재건 생산재건 간에 재고 줄이는 데에만 혈안이다.

거기에다 우리도 그랬지만 선진국의 금융권도 돈을 거둬들이는 데만 온 신경을 쓰니 수입을 위한 신용제공,특히 중장기 외상 수입을 지원하는 것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이처럼 각 경제 주체의 연말 실적에 대한 강박관념이 큰 상황에서 신규수출 주문이 급감한 것은 당연해 보인다. 본격적으로 구조조정에 들어가는 내년을 대비해서 기업이나 금융이나 '안 먹히기' 위한 연말 실적 만들기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KOTRA가 내년 1월 중순 개최하는 해외 유력 바이어 초청 행사에 당초 계획보다 세 배가 넘는 외국바이어가 한국에 오겠다고 신청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루하루 호흡기를 달고 연명하는 미국과 유럽의 자동차 업계가 한국산 부품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간 세탁기 등 한국 가전제품을 거들떠보지 않았던 일본 소비자가 한국산에 눈을 돌리는 이유는 무엇이며,LA지역 섬유 바이어의 37%가 한국산 섬유의 수입을 늘리겠다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번의 거래도 없었던 영국의 법무부가 교도소 물품의 한국산 구매를 진지하게 검토하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KOTRA 각 무역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이다.

한국 제품이 불황 속에서 주목을 받는 주된 원인을 환율과 바이어의 '실속형 가치형' 구매 패턴 변화 때문으로 보고 있다. 1년 전 일본제품과 한국제품의 가격이 1 대 1이었다면 지금은 1 대 0.7 정도로 우리 제품의 가격이 싸졌다. 환율 때문이다. 위안화의 고평가로 중국 제품과도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더 주목할 것이 글로벌 바이어들이 비용절감을 위해 품질 좋고 적정한 가격의 한국 제품에 눈을 돌리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수출의 미래는 중국과의 경쟁에 있지 않다. 우리 제품의 부가가치를 높여서 일본,유럽,미국과 같은 선진국 제품을 따라잡는 데서 찾아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바이어들의 비용절감 욕구야말로 선진국을 따라잡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또 세계 각국이 경기부양을 위해 엄청난 돈을 풀고 있다. 현재는 이 돈이 시중에 나오자마자 다시 은행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지만 이런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내년 초부터 나아질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내년이 쉽지는 않겠지만 이런 상황을 우리 수출업계가 잘 이용한다면 희망을 가질 만하다. 더 많은 시장을 노크하고 불황기에 팔리는 제품을 만들고,힘들더라도 연구개발에 손을 놓아서도 안된다. 그리고 전 세계의 불황 속에서 싹트고 있는 새 변화가 무엇인지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내년 수출 시장,우리 손으로 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