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 < 한경 가치혁신연구소장·yskwon@hankyung.com >

혁신에도 단계가 있다. 가장 낮은 것이 생산혁신이다. 그 다음이 상품·서비스 혁신, 그리고 그 위에 전략혁신이 있다. 최고의 단계는 경영모델 그 자체를 새로운 것으로 바꾸는 경영혁신이다.

생산혁신과 상품·서비스 혁신은 IT(정보기술)의 발달로 그 비결이 금방 알려지고 쉽게 모방되기 때문에 경쟁우위 확보가 어렵다. 이제까지 없었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내는 전략혁신도 독점적인 우위를 유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월마트도 사우스웨스트도 델컴퓨터도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후발주자들을 막을 방법이 적었다.

최고의 경영사상가로 평가받고 있는 게리 해멀은 "경영 모델 자체를 새로운 것으로 만드는 경영혁신이라야 궁극적인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경영자들이 자신들이 믿고 있는 과거의 경영원칙을 절대 버리려 하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경영모델은 어지간해선 모방되지 않고 아주 오랜 기간 동안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새로 낸 '경영의 미래'에서 20세기형 경영모델을 고집하는 회사는 모든 전제가 바뀐 21세기에 살아남을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보면 1960년대 이후 30여년간 인류사에 유례없는 고속성장을 이룬 우리 경제가 1990년대 이후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경영모델 자체에 대해서는 별 반성없이 낮은 단계의 혁신에 매달린 데 이유가 있는 건 아닐까.

촛불집회에서 보듯 정부가 법의 권위를 갖고 정한 일이 국민들의 마음을 잡지 못하면 실행하기 어렵게 된 것도 나라 경영 모델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뜻은 아닐까. 아무리 좋은 성과를 올린 거대기업도 국가차원의 금융위기가 오면 결국 정부와 은행 앞으로 끌려와 목숨을 구걸해야 하는 것 역시 경영 방식 그 자체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의미는 아닐까.

현대적 경영 모델이 만들어진 것은 20세기 들면서다. 헨리 포드 같은 이들이 고안해낸 관리와 통제 시스템이 100년 가까이 위력을 발휘해오고 있는 것이다. 상사가 명령을 내리고 부하는 이를 실행에 옮기고 하는 것이 골자다. 종업원들은 위에서 내려오는 목표를 반드시 완수해야 한다. 그 사이 파트너십 아웃소싱 인센티브 등 조직을 유연하게 하려는 여러가지 시도가 있었지만 '위에서 아래로'라는 골자는 바뀌지 않았다.

그러다 199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IT벤처붐이 일면서 새로운 경영모델이 나타날 조짐이 보였고 기존의 기업과는 전혀 다른 '아래에서 위로 그리고 옆으로'의 모델을 적용하는 구글 같은 기업이 유례없는 성공을 거두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2008년은 전 세계가 무력감에 빠진 한 해였다. 열심히 노력해도 세계적인 금융위기 앞에서 누구도 자유롭지 못한 현실에서 경제시스템 자체에 근본적인 회의도 들었던 시기였다.

올해는 새로운 경쟁이 벌어질 것이다. 원자재와 시장을 놓고 싸우는 구식 경쟁뿐만 아니라 창의성을 극대화하는 새 모델을 만들어내려는 경영혁신 경쟁까지,전세계의 나라와 기업이 뛰어드는 대회전이 벌어질 게 분명해 보인다.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는 용기로,근본적인 변화의 길을 모색하는 새해 첫날이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