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0만원권 발행을 무기한 보류하기로 결정했다. 사실상의 '발행 취소' 결정이다. 이로써 2006년 말 '국회의 고액권 발행 촉구 결의'로 시작된 10만원권 발행 계획은 2년 만에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정부가 10만원권 발행에 부정적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경제난으로 국민들이 씀씀이를 아끼고 있어 10만원권의 필요성이 줄었고,신용카드 사용이 늘어 10만원권 수표도 전보다 덜 쓰며,고액권이 돌면 물가가 뛸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내세운 이유를 하나씩 뜯어보면 석연찮은 구석이 많다. 우선 물가는 1만원권이 처음 나온 1973년에 비해 12배 이상 뛰었다. 물가가 오르면서 지갑에 현찰을 많이 갖고 다녀야 하는 불편이 여전하다.

경기침체로 허리띠를 졸라맨다고 해서 10만원권의 필요성이 줄어들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수표 사용이 감소했지만 아직도 많은 돈이 수표 발행에 들어간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0만원권 수표의 발행과 결제에 든 돈은 3000억원에 이른다. 10만원권 발행이 물가에 부담이 된다는 지적도 그동안 논의과정에서 '별 문제 없다'고 결론이 난 상태다.

이에 따라 10만원권 발행을 중단한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고 있다. 10만원권 앞면 인물로 선정된 백범 김구에 대해 현 정부 인사들이 탐탁지 않게 여긴다는 것이다. 정부는 '사실무근'이라고 펄쩍 뛰지만 의혹은 쉽게 꺼지지 않고 있다. 원래 10만원권 뒷면에 들어가기로한 대동여지도 목판본에 독도가 빠져 있어 이를 독도가 그려진 필사본으로 바꾸기로 했는데 이에 따른 일본과의 외교마찰을 의식했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10만원권 발행이 취소되면서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도 커지게 됐다. 국회에서 여야 의원들이 결의했고 한국은행이 지난해 최종도안까지 확정했다. 지난 정부 때 10만원권 발행의 장점을 홍보하며 국민들도 고액 화폐에 대한 기대가 높아진 상황이었다. 그런데 새 정부 들어 갑자기 정부의 말 한마디에 발행이 취소되는 것을 보면서 국민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새해에는 경제가 어렵다고 한다. 경제위기를 헤쳐가려면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가 필수적이다. 10만원권 발행 취소가 정부 정책의 신뢰를 갉아먹지 않을지 걱정이다.

주용석 경제부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