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태 < 논설위원 kst@hankyung.com >

기축년 새해다. 해가 바뀌면 모두가 희망을 말하지만 올해만큼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 힘든 때도 드물 듯하다. 그러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어렵지 않았던 때가 과연 얼마나 있었던가. 인류가 고도의 문화를 발전시키게 된 것도 숱한 역경을 통해서다.

그런데 인류가 오늘과 같은 문명을 꽃피우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한 존재가 또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소다. 소가 가축화되기 시작한 것은 신석기시대 초기부터라고 한다. 소는 인류의 생존에 너무도 중요한 양질의 영양 공급원이었다. 고기와 우유는 물론 치즈와 버터 요구르트에 이르기까지.소 가죽은 추위로부터 인류를 막아줬고 각종 장비를 만드는 데도 다용도로 쓰였다. 뿐만 아니라 농사를 짓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동물이었고 무거운 짐을 나르는 데도 소의 힘은 큰 도움이 됐다. 소의 배설물은 아직까지도 여러 나라에서 훌륭한 땔감으로 쓰이고 벽을 바르는 재료로도 사용된다.

그래서 산업화가 본격 진행되기 이전 인류의 삶은 거의 전적으로 소에 의지해왔고 소는 가장 큰 재산이었다. 소에 해당하는 영어단어 'cattle'이 자본 재산 등을 뜻하는 'capital'과 어원상 매우 가깝다는 것만 봐도 소가 사람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 수 있다. 아마도 소가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인류 문명은 존재할 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사람에게는 고마운 존재이지만 소만큼 대접 받지 못하는 동물도 드물다. 요즘엔 개 고양이 등 애완동물을 좀 심하게 다루면 동물학대라며 온세상이 시끄럽지만 소의 코를 뚫어 코뚜레를 하는 것을 두고 뭐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소를 실컷 약만 올리다 잔인하게 죽이는 투우도 일부에서의 비난은 있지만 스포츠로 오랜 기간 인기가 높다. 개고기를 먹으면 야만인 취급 받지만 쇠고기는 안 먹으면 오히려 이상한 사람 소릴 듣는다. 개와 고양이는 온갖 외국산까지 포함해 그 종류를 줄줄이 꿰는 사람이 많지만 소의 종류를 대보라면 황소와 젖소에서 더 이상 못 나가는 사람이 태반이다. 아마도 사람들에게 소는 그저 먹거리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소는 분류도 주로 고기의 질에 따른 육우(肉牛) 중심으로 이뤄진다. 너무 일찍 가축이 되어버린 소의 운명이리라.

소는 고집은 센 반면 겁 많고 우둔한 것으로만 여겨지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 중에는 사자나 호랑이를 죽일 정도로 무서운 녀석도 있다. 아프리카 물소를 공격하던 사자가 뿔에 찔려 죽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세계에서 가장 큰 소인 가우르(Gaur)종은 호랑이도 죽인다고 한다.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 앞에 있는 그 유명한 황소상(Charging bull)도 바로 이 가우르 종을 모델로 해 그 힘과 용맹성을 표현했다고 전해진다.

사상 유례 없는 경제위기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 감소로 국내 송아지 값은 2만~3만원까지 폭락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러나 어둠이 짙을수록 새벽은 가깝다고 하지 않았는가. 새해에는 맹수에 맞서는 용감한 황소의 기세처럼 우리 증시도 부진을 털고 훨훨 날아 오르길 기대해본다. 동시에 맹추위에 움츠러들고 있는 축산농가의 어깨도 활짝 펴지는 그런 한 해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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