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는 중동의 화약고] 다시 피로 물든 '가자'… 시온·아랍간 끝없는 보복의 악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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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스 점령 후 5차중동戰 위기고조
PLO 대신한 강경 하마스 점령이후 위기고조
이스라엘 지상군 투입 임박…5차 중동戰 가능성
2009년 새해 벽두 불길에 휩싸인 가자지구 접경엔 짙은 전운이 감돌고 있다. 북부 접경 지역엔 이스라엘 제7기갑여단 소속 탱크 수백대가 포신을 올린 채 진격 명령만 기다리고 있다. 남부 접경 지대에 집결한 공수여단 군인들은 장비를 조립하고 포신을 닦는 등 지상전 준비를 마쳤다.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적막속에 간간이 국경을 넘어 들리는 포성만이 '제5차 중동전쟁'의 서곡처럼 진지를 휘감았다.
예루살렘포스트는 2일 "며칠째 내린 비 탓에 지상군 투입을 미룬 지휘관들이 지상군을 가자지구로 투입시킬 최적의 기상 조건을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일각에선 구름이 걷히고 기온이 오르는 3일이 'D-데이'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국제사회의 휴전안을 거부한 이스라엘은 개전 일주일을 맞은 2일에도 전투기와 해군 함정 등을 동원해 하마스 정부 및 시의회 건물,하마스 지도자들의 주거지 등에 대한 공습을 계속했다. 이 과정에서 하마스 내 서열 10위권에 드는 강경파 지도자 니자르 라이얀이 이스라엘의 폭탄에 맞아 사망했다. 지난달 27일 오전 11시30분 이스라엘의 기습공격으로 시작된 이번 공습으로 400명 이상이 사망했으며 부상자도 2000명을 넘어섰다.
이에 맞서 하마스도 중거리 그라드 로켓 3발 등 로켓 5발을 이스라엘 남부 베르셰바 지역 등으로 발사했다. 하마스 지도자인 무시르 알-마스리는 "모든 시나리오에 대비하고 있다"며 "하마스는 마지막 숨이 붙어있을 때까지 싸울 것"이라며 결사항전 의지를 다졌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지상군 투입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세계 화약고'로 불리는 중동의 정세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돈사태로 빠져드는 양상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충돌의 역사는 4000년 전으로 거슬로 올라간다. 기원전 2000년부터 구약성서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묘사된 가나안 지역(옛 팔레스타인 땅·현 이스라엘)을 둘러싼 영토 갈등이 시작됐다.
하지만 시온(이스라엘)과 아랍민족간 본격적인 '피와 보복의 악순환'은 2차 세계대전 후 강대국들의 일방적인 영토분할 과정에서 잉태됐다. 유엔 총회는 팔레스타인 땅에 대한 영국의 위임통치 종결 6개월을 앞둔 1947년 11월 팔레스타인 분할안을 가결했다. 팔레스타인 전 지역(2만6323㎢)의 56.47%를 이스라엘에,42.88%를 아랍국에,나머지 0.65%에 해당하는 예루살렘을 국제관리지구로 할당한 것이다.
이스라엘 건국은 2000년 가까이 나라를 잃고 전 세계를 유랑하던 유대인들에게는 실지 회복이었지만,팔레스타인 땅에 살아온 팔레스타인인들에겐 삶의 터전을 잃는 비극이었다. 이후 1~3차 중동전쟁을 통해 팔레스타인들은 모든 땅을 빼앗기고 피점령지의 주민이 되거나 난민 신세로 전락한 채 반점령 투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주도적 역할을 한 데 이어 1988년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인 하마스가 만들어져 PLO를 대신해 두각을 나타냈다.
문제의 가자지구(360㎢)는 이스라엘이 2005년 38년간의 점령에 종지부를 찍고 완전 철수한 뒤 2007년 하마스가 온건 정파를 축출하고 정권을 잡은 곳이다. 위기를 느낀 이스라엘은 하마스 고사를 노려 가자지구 봉쇄 작전에 들어갔다.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작년 6월 6개월간 휴전에 합의했지만 이스라엘의 봉쇄는 이어졌다. 하마스는 지난해 12월19일 휴전기간이 끝나자 휴전 연장을 거부한 채 로켓포 공격을 재개했고,이스라엘은 급기야 지난달 27일 F16 전투기 60대를 동원해 하룻새 100t이 넘는 폭탄을 뿌리는 대대적인 공습을 감행했다.
이번 공습은 '이스라엘의 위험한 정치 게임'이란 진단도 나오고 있다. 다음 달 10일로 예정된 이스라엘 총선을 앞두고 중도 성향의 노동당과 카디마당이 이끄는 현 연립정부의 지지율이 낮아 재집권이 불투명해지자 가자지구 '강공'으로 정치적 돌파구를 찾아 나섰다는 분석이다. 실제 공습이 시작되기 이전에는 강경파인 베냐민 네타냐후 전 총리가 이끄는 보수 야당 리쿠드당이 우위를 보였으나,공습 이후 노동당 당수 에후드 바라크 국방장관과 카디마당 소속 치피 리브니 외무장관의 인기가 급상승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정치 게임이 성공할지 여부는 예단하기 어렵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이스라엘이 외교적 협상 과정에서 마지막 카드로 써야 할 대대적인 군사작전을 감행함에 따라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되고 아랍권의 저항에 부딪쳐 자칫 망국의 길로 향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제사회는 무력한 모습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지난달 31일 가자 공격을 중단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놓고 토론을 벌였지만 "하마스의 로켓 공격을 언급하고 있지 않아 편향됐다"는 미국과 영국의 반대로 표결에 부치지도 못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1일 리브니 이스라엘 외무장관과 만나 '48시간 휴전안'을 내놓았지만 "공격 중단 여부는 이스라엘이 적절한 때 결정할 것"이라는 대답만 들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오는 5일 중동을 방문해 다시 한번 평화 중재에 나설 예정이지만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면전'을 향한 도화선은 빠르게 타들어가고 있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
이스라엘 지상군 투입 임박…5차 중동戰 가능성
2009년 새해 벽두 불길에 휩싸인 가자지구 접경엔 짙은 전운이 감돌고 있다. 북부 접경 지역엔 이스라엘 제7기갑여단 소속 탱크 수백대가 포신을 올린 채 진격 명령만 기다리고 있다. 남부 접경 지대에 집결한 공수여단 군인들은 장비를 조립하고 포신을 닦는 등 지상전 준비를 마쳤다.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적막속에 간간이 국경을 넘어 들리는 포성만이 '제5차 중동전쟁'의 서곡처럼 진지를 휘감았다.
예루살렘포스트는 2일 "며칠째 내린 비 탓에 지상군 투입을 미룬 지휘관들이 지상군을 가자지구로 투입시킬 최적의 기상 조건을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일각에선 구름이 걷히고 기온이 오르는 3일이 'D-데이'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국제사회의 휴전안을 거부한 이스라엘은 개전 일주일을 맞은 2일에도 전투기와 해군 함정 등을 동원해 하마스 정부 및 시의회 건물,하마스 지도자들의 주거지 등에 대한 공습을 계속했다. 이 과정에서 하마스 내 서열 10위권에 드는 강경파 지도자 니자르 라이얀이 이스라엘의 폭탄에 맞아 사망했다. 지난달 27일 오전 11시30분 이스라엘의 기습공격으로 시작된 이번 공습으로 400명 이상이 사망했으며 부상자도 2000명을 넘어섰다.
이에 맞서 하마스도 중거리 그라드 로켓 3발 등 로켓 5발을 이스라엘 남부 베르셰바 지역 등으로 발사했다. 하마스 지도자인 무시르 알-마스리는 "모든 시나리오에 대비하고 있다"며 "하마스는 마지막 숨이 붙어있을 때까지 싸울 것"이라며 결사항전 의지를 다졌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지상군 투입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세계 화약고'로 불리는 중동의 정세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돈사태로 빠져드는 양상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충돌의 역사는 4000년 전으로 거슬로 올라간다. 기원전 2000년부터 구약성서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묘사된 가나안 지역(옛 팔레스타인 땅·현 이스라엘)을 둘러싼 영토 갈등이 시작됐다.
하지만 시온(이스라엘)과 아랍민족간 본격적인 '피와 보복의 악순환'은 2차 세계대전 후 강대국들의 일방적인 영토분할 과정에서 잉태됐다. 유엔 총회는 팔레스타인 땅에 대한 영국의 위임통치 종결 6개월을 앞둔 1947년 11월 팔레스타인 분할안을 가결했다. 팔레스타인 전 지역(2만6323㎢)의 56.47%를 이스라엘에,42.88%를 아랍국에,나머지 0.65%에 해당하는 예루살렘을 국제관리지구로 할당한 것이다.
이스라엘 건국은 2000년 가까이 나라를 잃고 전 세계를 유랑하던 유대인들에게는 실지 회복이었지만,팔레스타인 땅에 살아온 팔레스타인인들에겐 삶의 터전을 잃는 비극이었다. 이후 1~3차 중동전쟁을 통해 팔레스타인들은 모든 땅을 빼앗기고 피점령지의 주민이 되거나 난민 신세로 전락한 채 반점령 투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주도적 역할을 한 데 이어 1988년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인 하마스가 만들어져 PLO를 대신해 두각을 나타냈다.
문제의 가자지구(360㎢)는 이스라엘이 2005년 38년간의 점령에 종지부를 찍고 완전 철수한 뒤 2007년 하마스가 온건 정파를 축출하고 정권을 잡은 곳이다. 위기를 느낀 이스라엘은 하마스 고사를 노려 가자지구 봉쇄 작전에 들어갔다.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작년 6월 6개월간 휴전에 합의했지만 이스라엘의 봉쇄는 이어졌다. 하마스는 지난해 12월19일 휴전기간이 끝나자 휴전 연장을 거부한 채 로켓포 공격을 재개했고,이스라엘은 급기야 지난달 27일 F16 전투기 60대를 동원해 하룻새 100t이 넘는 폭탄을 뿌리는 대대적인 공습을 감행했다.
이번 공습은 '이스라엘의 위험한 정치 게임'이란 진단도 나오고 있다. 다음 달 10일로 예정된 이스라엘 총선을 앞두고 중도 성향의 노동당과 카디마당이 이끄는 현 연립정부의 지지율이 낮아 재집권이 불투명해지자 가자지구 '강공'으로 정치적 돌파구를 찾아 나섰다는 분석이다. 실제 공습이 시작되기 이전에는 강경파인 베냐민 네타냐후 전 총리가 이끄는 보수 야당 리쿠드당이 우위를 보였으나,공습 이후 노동당 당수 에후드 바라크 국방장관과 카디마당 소속 치피 리브니 외무장관의 인기가 급상승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정치 게임이 성공할지 여부는 예단하기 어렵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이스라엘이 외교적 협상 과정에서 마지막 카드로 써야 할 대대적인 군사작전을 감행함에 따라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되고 아랍권의 저항에 부딪쳐 자칫 망국의 길로 향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제사회는 무력한 모습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지난달 31일 가자 공격을 중단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놓고 토론을 벌였지만 "하마스의 로켓 공격을 언급하고 있지 않아 편향됐다"는 미국과 영국의 반대로 표결에 부치지도 못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1일 리브니 이스라엘 외무장관과 만나 '48시간 휴전안'을 내놓았지만 "공격 중단 여부는 이스라엘이 적절한 때 결정할 것"이라는 대답만 들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오는 5일 중동을 방문해 다시 한번 평화 중재에 나설 예정이지만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면전'을 향한 도화선은 빠르게 타들어가고 있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