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손해를 봤다고 해 증시를 떠난다면 지금의 기회는 다른 사람의 것이 될 수밖에 없죠."

굿모닝신한증권 명품 PB(프라이빗뱅커)센터를 거래하는 한 고객의 말이다. 지난해 코스피지수 1500선이 무너지면서 손절매하는 심정으로 주식과 주식형펀드 비중을 줄여 놓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이 고객 역시 주식 쪽 손실로 인해 지난 연말보다 금융자산은 30% 가까이 줄어든 상태다. 증권사 PB의 조언에 따라 현재는 현금 비중을 높여 놓은 상태지만 새해 들어 주식 비중을 재차 확대할 시점을 놓고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고액 자산가들인 은행.증권사 PB 고객은 올해 주식 투자 비중을 늘리는 쪽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경기는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지만 이를 주식을 싸게 살 기회로 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또 올 2분기를 주식 투자의 적기로 보고 있다. 하지만 10명 중 4명은 여전히 "주식의 주(株)자만 들어도…"라며 고개를 내젓고 있다.


◆그래도 주식 투자 늘린다

이번 설문조사에 응한 고액자산가 50명 중 29명(58%)은 올해 주식 투자액을 늘릴 계획을 갖고 있다고 응답했다.

코스피지수가 지난 한 해 동안 40%나 내려온 상황에서 추가적인 하락폭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이 배경에 깔려 있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경기부양과 금리인하 효과가 하반기에는 가시화되면서 경기를 돌려 놓을 것이라는 기대도 반영돼 있다.

현대증권 강남지점의 한 고객은 "이번 경기침체가 전 세계적인 것이어서 외환위기 직후와 같은 급격한 경기회복은 어려울 것이라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지수가 1000선 아래로 다시 밀리면 주식을 늘릴까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이 최근 중국 주식을 추가로 사들이고 있는 거나 '지금 투자하지 않는 건 노년을 위해 성욕을 아끼는 꼴'이라던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의 말을 곱씹어 보고 있다"고 털어놨다.

반면 이번 설문에 응한 고액자산가 중 나머지 21명(42%)은 투자액을 늘릴 계획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여전히 지난해 주식에서 입은 손실에 대한 부담과 믿었던 ELS(주식연계증권)에서조차 원금을 까먹은 데 대한 충격이 남아있는 모습이었다.

우리은행 강남센터의 PB 고객은 "덜 먹어도 절대로 원금은 까먹지 않는다는 게 나의 재테크의 최우선 원칙이었는데 지난해 그게 깨졌다"며 "주변의 권유에다 나의 욕심이 빚은 결과였다"고 말했다. 또한 이미 주식투자 비중이 높은 상태인 데다 시장 침체가 장기간 이어질 것이라 점도 투자를 주저하게 만드는 이유라고 답했다.


◆2분기 우량주 직접투자 나서볼까

주식 비중을 늘리려는 부자들은 19명(65%)이 우량주 중심의 직접투자에 나설 의사를 피력했다. 일부는 국내 주식형펀드를 통한 간접투자를 고려 중이라고 응답했다. 그 시기는 2분기가 11명, 1분기가 10명으로 올 상반기에 집중됐다. 지난 연말 은행.증권사 CEO(최고경영자)나 증권사 리서치센터장과 펀드매니저 설문조사에서 나온 결과와 비슷하다. 전문가들의 전망에 어느 정도 동감하고 실제 투자에도 나설 의향이 있다는 의미다.

증시 전문가들은 올 시장 전망이 여전히 밝지 않은 상황이어서 철저히 우량주 중심의 투자에 나설 것을 권하고 있다.

올 코스피지수는 1000~1500선으로 전망치가 모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일시적으로 900선이 깨질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강현철 우리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1분기까지는 증시가 비관과 무관심의 단계를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금융위기와 본격화된 실물경기 침체, 부정적인 전망치 등이 투자심리를 끌어내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2분기 이후부터 전 세계적인 경기부양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내다봤다.

정영완 삼성증권 투자전략센터장도 "1분기 증시는 한 차례 출렁임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핵심 우량주 중심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올 주식투자 수익률의 눈높이도 낮출 필요가 있다며 올 수익률을 20~30% 수준으로 예상했다.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