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ign] 꿈틀꿈틀 프리폼 건축 네모를 비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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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우리 도시풍경에서 고유 브랜드로 이뤄진 로드숍(길거리에 있는 점포)을 구경하기가 힘들어졌다. SS패션 죠다쉬 등 눈에 익은 국산 패션 브랜드숍들이 시나브로 사라지고 그 자리를 외국 브랜드가 채웠기 때문이다.
길거리에 친숙하게 자리했던 이들 장소들은 또 대형 할인매장과 백화점으로 흡수되면서 더욱 귀해졌다. 특히 해외 유명 브랜드들은 뉴욕 파리 런던 도쿄 등 선진국에서 갈고 닦은 영업테크닉으로 국내 도시도 빠르게 점령해왔다. 하지만 이들의 도시공간 점령이 반드시 부정적이지만은 않았다. 점포와 간판 등의 디자인 수준을 높이고,도시풍경을 세련된 모습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상당히 기여했기 때문이다.
유명 건축가들이 설계한 상가건물은 비단 국내뿐만 아니라 선진국 도시에서도 주변 분위기를 일거에 바꾸는 역할을 한다. 예컨데 일본의 유명 건축가인 토요 이토(Toyo ito)가 설계한 '동경 토즈 숍',국내의 리움미술관을 설계한 렘쿨하스(Rem Koolhaas)의 '뉴욕 프라다 숍' 등이 대표적 사례다. 이들은 로드숍 주변을 아름답게 변화시키고 관광명소로 바꾸는 역할까지 하게 된다.
그런 측면에서 서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청담동의 명품거리에는 세계적 브랜드들의 로드숍 경연장이 된 지 오래다. 국내 패션산업 시장 연간 규모는 22조원에 달한다.
그런데 왜 국내에는 내세울 만한 국산 브랜드 로드숍이 없을까. 일단은 상품구매 문화에 따른 원인이 가장 크다. 거리에 멋진 로드숍을 만들어 놓아도 가격이 비쌀 것 같은 이미지 때문에 구매자들은 눈길을 주지 않는다. 이 때문에 브랜드들은 로드숍을 선택하기보다 할인점과 백화점으로 몰리게 된다. 로드숍이 자리잡지 못하는 '악조건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에 지어진 '엘로드 힐즈' 매장은 이 같은 로드숍 환경을 인정하면서도 꿋꿋이 도전한 사례로 꼽힌다. 엘로드는 순수 국내 골프 브랜드다. 먼저 자리잡은 해외 유명 골프 브랜드와 당당히 경쟁하기 위해 강남권인 논현동에 터를 잡았다.
설계자는 엘로드의 이 같은 의도를 살리기 위해 인테리어 컨셉트를 '자부심과 당당함'을 강조하는 쪽으로 잡았다. 건물 첫 인상을 좌우하는 건물 정면부(파사드)를 출입구와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덩어리처럼 꾸민 것도 이 때문이다. 강인한 인상을 주기 위해서다.
여러 가지 상품을 한꺼번에 보여주고자 하는 일반적인 로드숍 모양과는 크게 다른 모양이다. 기존 상가건물의 외형과 내부가 대부분 직사각형의 조합으로 이뤄진 것과는 대조적이다. 엘로드 힐즈는 이 같은 파격으로 행인의 시선을 한몫에 집중시킨다. 행인의 관심을 다시 '방문 충동'으로 연결시키기 위해 외부에 화려한 경관조명을 연출시켰다.
내부에 들어서면 밖에서 느꼈던 단순함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방문객을 사로잡는다. 인테리어와 가구들이 보여주는 입체적 다양함에 깜짝 놀란다. 상품 진열대,휴게공간,의자 등 다른 곳에서 보기힘든 조형미가 강하게 묻어난다. 자연 속에 펼쳐진 골프장의 페어웨이나 그린을 형상화한 모양으로 꾸며져 하나 하나가 재미있다. 매장 카운터와 상담 테이블,상품 디스플레이 벽면도 골프장의 각 홀이 연결된 것처럼 엮여있다. 방문객은 코스를 따라 그저 공간과 상품을 즐기면 된다.
엘로드 힐즈의 가장 큰 매력은 이 같은 공간과 가구 구성의 입체성과 연계성이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패션 로드숍 디자인은 밋밋한 2차원적 평면형태였다. 이로써 방문객들은 엘로드 힐즈에 들어선 순간 뭔가를 사야 한다는 강박관념보다 이야기가 살아있는 동화나라에 온 듯한 분위기에 빠진다.
이 정도면 국내 브랜드로 만들어진 로드숍도 외국 브랜드와 경쟁을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상품의 품질 못지 않게 물건을 파는 공간의 구성 능력도 수준급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인테리어는 단순히 멋진 소품을 갖다 놓고 화려한 색상치장만 한다고 끝나지 않는다. 공간의 활용목적을 살릴 수 있는 생명력이 가미돼야 한다. 엘로드 힐즈 인테리어는 그곳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한눈에 알 수 있게 하는 기분좋은 작품이다.
/장순각 한양대 실내환경디자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