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현재 직면해 있는 상황은 1998년 외환위기 때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점들이 많다. 우선 붕괴 위험에 처한 중산층의 범위가 다르다.

1997년과 1998년 당시의 위기 근원은 일부 기업들과 금융회사에서 비롯된 한국만의 문제였다. 이 때문에 당시 구조조정의 핵심 타깃은 공적자금이 투입된 261개 금융회사들이었다.

1999년 말 국내 시중은행들의 총 직원 수는 1997년 말에 비해 34.4%(약 3만9000명)나 줄어드는 구조조정을 당했다. 금융회사 직원 등 화이트칼라 계층에 속하는 중산층이 상대적으로 큰 피해를 본 셈이다.

물론 당시에도 대우 한보 등 상당수 대기업 그룹들이 무너졌지만 해외 시장이 건재했던 탓에 수출기업들은 오히려 호황기를 맞았고 빠르게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위기는 우리 내부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전 세계가 직면한 문제다. 금융에 이어 실물경제로까지 위기가 확산되면서 제조업,그중에서도 수출 기업 중심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지고 있다.

이는 외환위기 때 화이트칼라에서 시작된 중산층 붕괴가 이번에는 블루칼라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의미다.

한 민간연구소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타격을 은행권이 가장 먼저 받고 있지만 현재 구조조정을 통해 감축한 인력은 외환위기 때의 30분의 1 수준인 1300명에 불과하다"며 "문제는 이미 감산에 들어가거나 공장 가동을 중단한 제조업체들의 상황이 악회돼 블루칼라 중산층이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블루칼라 중산층의 붕괴는 곧바로 지방 중산층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되고 있다. 외환위기 당시에는 서울 등 수도권에 본거지를 둔 금융회사 및 일부 대기업 관리직,사무직의 구조조정으로 이들 지역에 거주하는 중산층이 상대적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지방에 있는 수출 관련 제조업체들로 위기가 확산되고,이와 더불어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미분양 아파트 문제가 풀리지 않아 지방 소재 건설사들의 연쇄 부도가 현실화될 경우 지방 중산층이 입을 타격은 훨씬 클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