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치과 양지윤 원장이 무료치료 '온정'

"좀 따끔할겁니다. 아파요? 아프면 이야기해야 돼요. "

지난 2일 낮 12시가 갓 지난 시각.서울 성동구 왕십리역 인근에 있는 스타일치과 원장 양지윤씨(36)가 치료대에 누워있는 박정일씨(27)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10여분에 한번 꼴로 물었다. 그때마다 박씨는 마취 때문에 불편한 듯 "아니요"란 말을 입안에서 웅얼거렸다. 그는 4시간 이상 걸린 치료에도 아프다는 말을 한번도 하지 않았다.

박씨는 인천에 있는 노숙자들의 쉼터인 '내일을 여는 집'(이하 내여집)에서 산다. 유기농 쌀과 배 등을 판매하는 내여집의 도농직거래센터(이하 도농)가 그의 직장이다. 노숙자였던 박씨는 센터 홈페이지(www.edonong.com)에 각종 농산물의 사진을 올려놓는 일로 돈을 벌어 자립을 준비 중이다. 철없던 시절 길거리에서 싸움하다 앞니 5개를 잃었지만 어려운 형편 때문에 병원문 앞에 가보질 못했다. 그랬던 그가 치과 치료를 받게 된 것은 양 원장의 따뜻한 손길 덕분이었다.

양 원장은 지난달 한국경제신문 기자들과 '내여집' 재활인들로 구성된 '희망등반대'의 지리산 종주 기사(본지 2008년 12월24.25일자 참조)를 읽고 취재기자에게 연락을 해왔다. 부정(父情)을 모른 채 커왔던 박씨의 굴곡진 인생에 마음이 움직였다고 했다. 그가 처음 보낸 메일은 짧았다. "앞니가 부러진 박정일씨에게 제가 치아 치료를 해주면 어떨까 싶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답신을 보낸 바로 다음 날 장문의 편지가 도착했다. 그는 "정일씨 웃음을 찾는 일에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했다.

첫 치료를 했던 이날 양 원장은 극구 인터뷰를 사양했다. "큰일도 아닌데 기사가 나는 게 부담스럽다"며 사진취재도 꺼려했다. 양 원장은 박씨의 앞니 6개를 치료했다. 잇몸이 이를 많이 덮고 있어 박씨는 레이저로 잇몸을 절개하는 수술을 받았다.



양 원장은 박씨의 썩어서 부서진 치아를 4시간여 동안 치료한 뒤 임시 치아로 덮어줬다. 양 원장은 "절개한 잇몸이 아물면 진짜 환한 웃음을 돌려드리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치료를 마친 뒤 박씨는 제일 먼저 화장실로 달려갔다. 확 변한 이를 보고 나온 그는 말없이 활짝 웃었다. 양 원장이 약속한 치아치료는 모두 12개.꼬박 한 달이 걸리는 작업이다.

박씨에게 찾아온 기쁜 소식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노숙인 재활센터로는 처음으로 최근 내여집의 '도농'이 노동부가 지원하는 '사회적 기업'으로 선정된 것.취약계층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업을 선정해 노동부가 최저임금 등을 보장하는 형식으로 지원이 이뤄지는데 박씨에게도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내여집을 돌보고 있는 김철희 목사는 "이번 사회적 기업 선정으로 도농이 인터넷에서 판매하고 있는 유기농 쌀 등의 농산물 판로가 열릴 것으로 기대한다"며 "재활인들의 자립도도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예 기자 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