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받으려 악용.흠집내기 늘어 "채권자가 신청자격 제한해야" 지적

한 채권자가 자신의 돈을 갚지 않는다며 부채가 많지도 않은 현대산업개발에 대한 파산신청을 했으나 법원이 기각했다.

이를 계기로 채권자가 무분별하게 파산신청을 남용,기업 압박 수단으로 삼는 것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4일 서울중앙지법 등에 따르면 정모 변호사(47)는 자신의 땅이 2006년 서울~춘천고속도로 사업부지로 수용된 뒤 토지수용이 부당하다는 이유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 승소한 정 변호사는 항소심 진행 도중 서울중앙지법에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을 파산시켜 달라는 신청을 냈다. 법원에서 파산이 선고되면 이 회사는 사업을 중단하고 남은 재산을 모두 처분해 채권자들에게 나눠줘야 한다.

정 변호사는 파산 신청 이유로 회사측이 자신의 땅을 무단으로 훼손했기에 원상회복비용 및 임대료 500억원을 내야 하는데 이를 지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법 파산12부(부장판사 이동원)는 정 변호사의 파산신청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현대산업개발이 정 변호사에게 돈을 주지 않은 것은 관련 재판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파산을 선고하려면 기업이 지급불능 상태에 빠지고 부채가 자산보다 많아야 하는데 이 회사는 자산이 부채보다 2조2700억원 이상 많은 등 파산 원인이 없다"고 밝혔다.

법원에서 기각되기는 했지만 정 변호사의 파산신청은 황당했다는 게 법조계의 일반적인 평가다. 정 변호사가 기각될 줄 알면서도 파산신청 사실 자체가 기업에 피해가 된다는 점을 노린 것 아니냐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채권자 파산신청이 남용되는 것은 현행법상 채권자 파산신청에는 자격 제한이 없어서다. 자신이 받을 돈이 10원이든 1000억원이든 관계 없이 돈을 안 갚는다면 채무자에 대해 파산을 신청할 수 있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임치용 변호사는 "회생신청의 경우 자본의 10분의 1 이상에 해당하는 채권을 가진 채권자만 할 수 있지만 파산신청은 채권자라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며 "파산과 관련해서도 자격을 제한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민제 기자 pmj53@hankyung.com


◆파산 신청=채권자,채무자 모두 신청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자신이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경우 개인파산 신청을 한다. 하지만 채권자가 자신의 돈을 받아내기 위해 특정인 또는 특정기업에 대한 파산신청을 할 수도 있다. 이 경우 법원이 파산신청을 받아들일 경우 해당 기업은 남은 재산을 팔아 빚을 갚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