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외환 위기를 극복한 사람들] (2) 박성철 신원 회장‥패션 살리기위해 나머지는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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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철 신원 회장(69)은 요즘도 신원CC(경기도 용인) 근처에 가지 않는다. 10년 전 외환위기 때 무려 1000명의 직원을 내보내며 눈물을 쏟았던 기억 때문이다.
신원 CC도 그때 팔았다. 신원은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매출 2조원에 재계 순위 31위를 달리던 국내 패션업계 1위 기업이었다.
그러나 사업확장을 위해 끌어다 썼던 부채가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대다수 기업들이 차입위주의 경영을 하고 있었던 때.금융권 역시 '대출 세일'에 열을 올리던 시절이었다.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문제는 폭발했다. 원 · 달러 환율은 달러당 800원대에서 1700원대까지 급등했다. 금리는 최고 연 49%까지 치솟았다.
2억달러였던 신원의 외화부채도 순식간에 두 배로 불어났다. 1998년 경상적자는 5346억원으로 매출액(4890억원)을 웃돌았다.
부채비율은 550%에 달했다. 신규 대출을 받기는커녕 당장 공중분해될 위기에 처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수시장까지 공급과잉에 시달리면서 수익성이 곤두박질쳤다. 재고가 눈덩이처럼 쌓이는 건 당연했다. 사면초가 그 자체였다.
위기는 박 회장의 건강부터 시험하고 들어왔다.
"외환위기 이후 갑자기 불어닥친 시련에 스트레스와 과로,탈장으로 두 번이나 수술을 받았죠.수술을 받은 다음 날부터 전화기 2대를 붙잡고 병실에서 사무를 봤어요. 채권단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찬성 여부에 따라 회사의 운명이 갈릴 수 있었던 중요한 시기였거든요. 덕분에 한 달 넘게 병원 신세를 져야 했습니다. "
이런 간절한 노력이 통한 덕분일까. 워크아웃이 채권단에서 받아들여졌다. 박 회장은 보유 주식을 전량 내놓고,회사 재기에 모든 것을 걸었다. 24개(국내 16개,해외 8개) 계열사 가운데 주력인 패션부문을 제외한 골프장,건설,전기,전자 등을 모두 정리하며 '선택과 집중'의 전략을 택했던 것.
박 회장은 "당시 1700명이던 직원을 700명으로 감원할 때 '뼈를 깎는 고통'이라는 표현이 절로 나왔다"고 넌더리를 쳤다.
신원은 이처럼 혹독한 구조조정 덕분에 단 한푼의 빚도 탕감받지 않고 5년 만에 워크아웃을 조기졸업했다. 2007년엔 무차입 경영을 선언하는 등 성공적인 재기의 길을 걸었다.
10년 전과 비슷한 양상의 위기가 다시 찾아온 지금.신원은 이제 꿈쩍도 하지 않을 정도로 탄탄한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남의 돈을 쉽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보수적인 재무전략은 환율급등과 '키코(KIKO · 환헤지파생상품)'로 인한 피해를 모두 비켜갈 수 있게 했다. 오히려 환차익으로 내수경기 부진의 공백을 메울 수 있었다.
35년 경영인으로서 박 회장은 "이제 시대를 읽는 눈이 자연스럽게 트였다"고 말한다. 그는 2년 전부터 현재의 불황을 예견했다. 그는 "20년 전에는 2~3년마다 '불황'의 주기가 돌아왔는데 외환위기 이후엔 5년 주기가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비해 부채를 줄여 나갔고,부동산을 매각하는 등 현금 확보에 나섰다. 개성 제2공장 착공 등 기존 투자는 꾸준히 이어가면서 관련 업종 외에는 절대 손대지 않는다는 원칙도 세웠다.
'제조원가 상승' 문제도 미리 내다보고 대비책을 마련해 놨다. 원가절감을 위해 과테말라 · 인도네시아 · 베트남 · 중국 등 4개국으로 해외 생산기지를 다변화했다. 개성공단을 통한 '메이드 인 개성' 의류 생산도 다른 업체들보다 한 발 앞서 개척했다.
작년 트래드클럽 · 원재패션 등 중견업체들의 잇따른 부도소식과 브랜드 중단으로 국내 패션업계가 시끄러웠지만 신원만은 여유로울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준비 덕분이다.
그 결과 작년 베스띠벨리 · 씨 · 비키 등 5개 패션 브랜드 등을 운영하며 균형잡힌 내수와 수출을 통해 안정적인 경영성과를 올렸다.
환율 상승에 힘입어 지난해 수출 실적은 외환위기 이후 최대 기록을 세웠다. 그럼에도 박 회장은 "올해는 지난해보다 더욱 힘든 한 해를 보낼 것으로 예상되지만 위기가 아닌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직원들에게 강조하고 있다.
내수 브랜드 고급화를 위해 디자인 역량을 더욱 강화하고,장기적인 관점에서 브랜드나 패션업체 M&A(인수 · 합병)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믿음경영''신뢰경영'은 지난 30여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오전 4시30분 새벽기도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박 회장의 경영철학이다. 그는 회사의 '존폐위기'라는 극단적 상황에서도 굳건한 '신앙심'을 바탕으로 국내외 바이어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한결같은 모습을 보였다. 그가 보여준 '믿음과 신뢰'는 해외 바이어들 중 누구도 등을 돌리지 않고 30년 넘게 신원을 찾고 있는 비결이다.
"경영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인내심이며 이런 때일수록 믿음을 갖고 버텨낼 수 있는 불굴의 의지가 필요합니다. 외환위기로 제가 겪었던 시련은 제게 더욱 강한 회생 의지를 심어줬다고 생각합니다. "
글=안상미/사진=양윤모 기자 saramin@hankyung.com
신원 CC도 그때 팔았다. 신원은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매출 2조원에 재계 순위 31위를 달리던 국내 패션업계 1위 기업이었다.
그러나 사업확장을 위해 끌어다 썼던 부채가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대다수 기업들이 차입위주의 경영을 하고 있었던 때.금융권 역시 '대출 세일'에 열을 올리던 시절이었다.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문제는 폭발했다. 원 · 달러 환율은 달러당 800원대에서 1700원대까지 급등했다. 금리는 최고 연 49%까지 치솟았다.
2억달러였던 신원의 외화부채도 순식간에 두 배로 불어났다. 1998년 경상적자는 5346억원으로 매출액(4890억원)을 웃돌았다.
부채비율은 550%에 달했다. 신규 대출을 받기는커녕 당장 공중분해될 위기에 처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수시장까지 공급과잉에 시달리면서 수익성이 곤두박질쳤다. 재고가 눈덩이처럼 쌓이는 건 당연했다. 사면초가 그 자체였다.
위기는 박 회장의 건강부터 시험하고 들어왔다.
"외환위기 이후 갑자기 불어닥친 시련에 스트레스와 과로,탈장으로 두 번이나 수술을 받았죠.수술을 받은 다음 날부터 전화기 2대를 붙잡고 병실에서 사무를 봤어요. 채권단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찬성 여부에 따라 회사의 운명이 갈릴 수 있었던 중요한 시기였거든요. 덕분에 한 달 넘게 병원 신세를 져야 했습니다. "
이런 간절한 노력이 통한 덕분일까. 워크아웃이 채권단에서 받아들여졌다. 박 회장은 보유 주식을 전량 내놓고,회사 재기에 모든 것을 걸었다. 24개(국내 16개,해외 8개) 계열사 가운데 주력인 패션부문을 제외한 골프장,건설,전기,전자 등을 모두 정리하며 '선택과 집중'의 전략을 택했던 것.
박 회장은 "당시 1700명이던 직원을 700명으로 감원할 때 '뼈를 깎는 고통'이라는 표현이 절로 나왔다"고 넌더리를 쳤다.
신원은 이처럼 혹독한 구조조정 덕분에 단 한푼의 빚도 탕감받지 않고 5년 만에 워크아웃을 조기졸업했다. 2007년엔 무차입 경영을 선언하는 등 성공적인 재기의 길을 걸었다.
10년 전과 비슷한 양상의 위기가 다시 찾아온 지금.신원은 이제 꿈쩍도 하지 않을 정도로 탄탄한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남의 돈을 쉽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보수적인 재무전략은 환율급등과 '키코(KIKO · 환헤지파생상품)'로 인한 피해를 모두 비켜갈 수 있게 했다. 오히려 환차익으로 내수경기 부진의 공백을 메울 수 있었다.
35년 경영인으로서 박 회장은 "이제 시대를 읽는 눈이 자연스럽게 트였다"고 말한다. 그는 2년 전부터 현재의 불황을 예견했다. 그는 "20년 전에는 2~3년마다 '불황'의 주기가 돌아왔는데 외환위기 이후엔 5년 주기가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비해 부채를 줄여 나갔고,부동산을 매각하는 등 현금 확보에 나섰다. 개성 제2공장 착공 등 기존 투자는 꾸준히 이어가면서 관련 업종 외에는 절대 손대지 않는다는 원칙도 세웠다.
'제조원가 상승' 문제도 미리 내다보고 대비책을 마련해 놨다. 원가절감을 위해 과테말라 · 인도네시아 · 베트남 · 중국 등 4개국으로 해외 생산기지를 다변화했다. 개성공단을 통한 '메이드 인 개성' 의류 생산도 다른 업체들보다 한 발 앞서 개척했다.
작년 트래드클럽 · 원재패션 등 중견업체들의 잇따른 부도소식과 브랜드 중단으로 국내 패션업계가 시끄러웠지만 신원만은 여유로울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준비 덕분이다.
그 결과 작년 베스띠벨리 · 씨 · 비키 등 5개 패션 브랜드 등을 운영하며 균형잡힌 내수와 수출을 통해 안정적인 경영성과를 올렸다.
환율 상승에 힘입어 지난해 수출 실적은 외환위기 이후 최대 기록을 세웠다. 그럼에도 박 회장은 "올해는 지난해보다 더욱 힘든 한 해를 보낼 것으로 예상되지만 위기가 아닌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직원들에게 강조하고 있다.
내수 브랜드 고급화를 위해 디자인 역량을 더욱 강화하고,장기적인 관점에서 브랜드나 패션업체 M&A(인수 · 합병)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믿음경영''신뢰경영'은 지난 30여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오전 4시30분 새벽기도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박 회장의 경영철학이다. 그는 회사의 '존폐위기'라는 극단적 상황에서도 굳건한 '신앙심'을 바탕으로 국내외 바이어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한결같은 모습을 보였다. 그가 보여준 '믿음과 신뢰'는 해외 바이어들 중 누구도 등을 돌리지 않고 30년 넘게 신원을 찾고 있는 비결이다.
"경영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인내심이며 이런 때일수록 믿음을 갖고 버텨낼 수 있는 불굴의 의지가 필요합니다. 외환위기로 제가 겪었던 시련은 제게 더욱 강한 회생 의지를 심어줬다고 생각합니다. "
글=안상미/사진=양윤모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