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2년 일본에 수신사로 간 박영효(1861~1939)의 모습을 담은 초상화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또 박영효가 일본에 도착한 직후 최초의 태극기를 내걸었던 니시무라(西村) 여관의 전경이 담긴 동판화도 공개됐다.

한철호 동국대 교수는 최근 학술지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31집에 기고한 <우리나라 최초의 국기(박영효 태극기)와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 제작 국기의 원형 발견과 역사적 의의>라는 논문을 통해 이를 공개했다.

박영효의 초상화는 1883년 아사히(朝日)신문(오사카판) 1월10일자에 게재된 것이다.

박영효의 사진은 여러 장 있지만 수신사 시절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가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한 교수는 "통상 수신사들은 사진을 찍는 것이 관례지만 수신사 박영효를 찍은 사진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아마 갑신정변 등을 이유로 폐기됐을 가능성이 크다"며 "이 초상화는 지인을 통해 올해 일본에서 입수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박영효가 수신사 시절 쓴 '사화기략'(使和記略)을 보면 그가 1882년 10월2일 고베에서,같은 달 26일 도쿄에서 사진을 찍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 초상화는 26일 도쿄에서 찍은 사진을 토대로 그린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박영효가 일본에 도착한 직후 태극기를 내걸었던 니시무라 여관의 전경이 담긴 동판화도 공개했다.

그는 "1874~1875년 니시무라 여관의 전경이 담긴 동판화를 지난해 일본에서 발견했다"며 "박영효가 태극기를 내건 니시무라 여관의 당대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라고 말했다.

한 교수에 따르면 니시무라 여관은 1931년 대대적인 수리를 거쳤으나 1945년 폭격으로 사라졌다. 동판화에는 당시 여관 앞 마당에 대형 깃대가 있으며 이 깃대에 여관 이름이 적힌 깃발이 걸려 있다.

그는 또 논문에서 "'사화기략'에 태극기의 크기가 가로 세로 5 대 2의 비율인 것으로 기록됐지만 오기일 가능성이 크다"며 "아마 3을 5로 잘못 기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이 밖에 한 교수는 박영효가 수신사로 일본으로 가는 도중 선상에서 태극기를 그린 일본 배 메이지마루(明治丸)호가 도쿄해양대에 보존돼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이 배는 1978년 일본 중요 문화재로 지정된 바 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