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앞이 안보이면 어둠도 없어, 한탄 말고 미래 위해 투자해야

"좋은 회사를 만들어 세상에 도움 되는 일을 하겠노라 다짐해 봅니다. 열두 살 때 시력을 잃은 안드레아 보첼리가 번뇌와 고통,좌절을 통해 감동을 전하는 음악을 만든 것처럼 사람은 살아가면서 고난과 시련을 통해 성장하고 강해지는 것같습니다. 2009년,가장 어려운 해라지만 '꼭' 반전의 기회가 되길 기원합니다. "며칠 전 L사장에게서 받은 연하장의 내용이다. 중견기업 오너인 그는 지금도 한 달에 열흘 이상 해외에서 뛴다. 경쟁사인 일본 회사의 막무가내식 소송에 시달리면서도 세계 빅(big) 3 회사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잠시도 쉬지 않는다. 격려받아야 할 그가 오히려 더 잘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주위를 위로한 셈이다.

그는 매년 초 가까운 이들에게 짤막한 편지와 함께 편안하고 아름다운 선율의 클래식 음악CD를 선물한다. 그런 그가 올해 선택한 게 맹인 성악가 안드레아 보첼리의 베스트 음반 '비베레(Vivere,나는 살리라)'다. 음반엔 비베레를 비롯?t기도?u?t꿈?u?t너에게?u?t믿음이 있기에?u?t침묵의 목소리?u 등 보첼리의 대표곡 17곡이 담겨있다. 세계적 불황으로 밤잠을 못 이룰 그가 이 CD를 고른 심정과 각오를 생각하면 가슴이 멍해진다.

보첼리의 삶은 꿈과 의지와 노력의 집합체다. 이탈리아 농가에서 태어난 그는 원래 시력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일찌감치 피아노를 배우고 교회 성가대에 섰으나 열두 살 때 사고로 완전히 실명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시력을 잃고 두려움과 절망의 눈물을 흘린 건 꼭 한 시간뿐이었다"는 것이다.

일주일 만에 마음을 추스렸다는 그는 노력 끝에 법학박사가 됐다. 잠시 변호사로 활동하던 그는 그러나 어렸을 적 꿈이던 노래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야간업소에서 피아노를 치며 번 돈으로 테너 프랑코 코렐리에게 레슨받고 1992년 팝스타 주케로와 함께 성가(聖歌) '미제레레(Miserere,불쌍히 여기소서)'를 내놨다.

94년 산레모 가요제에서 우승한 뒤 96년 가수 사라 브라이트만과 부른 '안녕이라 말해야 할 시간(Time to say goodbye)'이 공전의 히트를 치며 세계적 스타로 발돋움했다. 이후 클래식과 대중음악을 넘나드는 팝페라 가수로 오페라 아리아는 물론 가요와 영화음악 등 모든 장르를 망라,통산 6000만장의 앨범을 판매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호세 카레라스의 중간 정도 음색을 지닌 그의 노래는 뭐라 꼬집어 설명하기 힘든 울림을 지닌다. 그윽하고 감미로운 목소리도 목소리지만 긴 세월 운명과 대적하면서 쌓은 내공에서 우러나오는 깊이와 향기임에 틀림없다. 끔찍한 불행에도 쓰러지지 않은 비결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어둠을 볼 수 없습니다. " 더 이상 어두울 게 없으니 두려울 것도 없었다는 얘기다. 그는 또 성공하자면 "일분일초라도 한탄하는 데 허비할 게 아니라 미래를 위해 투자하고,자신을 믿고 희망을 버리지 말고,겸손하라"고 조언했다. 그리곤 지금도 늘 운동선수처럼 연습한다고 털어놨다.

언제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는 마당이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에서도 세계 일류기업,일류상품을 만들겠다는 열정과 패기로 밤낮 없이 동분서주하는 이가 어디 L사장뿐이랴.갑자기 곤경에 처한 수많은 기업인과 기업 종사자들에게 보첼리의 일기는 따뜻한 위로와 힘이 될 듯싶다.

"내가 마음 속 깊이 간직했던 꿈들은 현실이란 장벽에 부딪쳐 깨져 버렸다. 산산조각이 나버린 것이다. 그러나 난 몸을 숙여 그 조각들을 하나하나 주웠다. 이제 끝없는 인내로 그것들을 다시 맞추려 한다. 그 조각들에 옛날의 찬란한 빛을 돌려주고 날개를 달아줄 것이다. 나는 법을 배워 서서히 하늘을 날아갈 수 있도록.누가 알겠는가. 현실의 장벽을 넘어 저 높은 곳까지 날아갈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