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여성 '고품격 에로 史劇' 영화에 몰린다
'미인도' 히트 이어 '쌍화점' 개봉 6일만에 175만명
성애장면보다 작품성에 호감 … 섬세한 연출도 한몫

조인성과 주진모가 주연한 에로티시즘 사극 '쌍화점'(사진)이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달 30일 전국 500개관에서 개봉된 이래 6일 현재 175만명을 돌파했다. 이 같은 추세라면 300만명은 금방 넘어설 전망이다. 2003년 352만명을 동원한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에서 비롯된 에로티시즘 사극이 '왕의 남자'(2005년,1230만명),'음란서생'(2006년,258만명),'미인도'(2008년,240만명) 등을 거치며 관객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쌍화점'은 고려시대 공민왕이 동성애자였다는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에서 출발해 동성애와 이성애를 넘나드는 성애로 관객들을 사로잡고 있다. 영화관을 찾은 김정은씨(29)는 "'꽃미남 스타'조인성과 주진모의 얼굴을 두 시간 동안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며 "남녀간의 감정이 변화하는 과정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처리됐다"고 말했다.

배급사인 쇼박스 측은 다른 영화들에 비해 중년 관객,특히 중년 여성이 많은 것으로 분석했다. 지난해 485만명을 동원한 할리우드 영화 '맘마미아'에는 300만명쯤 다녀간 후 중년 여성들이 뒤늦게 찾아왔지만 이번에는 미리 정보를 입수한 뒤 개봉과 함께 입장한 점이 다르다는 설명이다. 이는 '미인도'와 '음란서생''스캔들' 등에서도 입증됐다. 특히 15세 이상 관람이 가능했던 '왕의 남자'는 중년 부부와 함께 중·고생 자녀까지 찾아 대박을 일궈냈다.

이처럼 관객층이 다양해진 것은 단순히 성애 장면에만 매달렸던 1980년대 유행한 '에로 사극'들과 달리 작품성이 한결 높아졌기 때문이다.

'왕의 남자'는 동성애가 중요한 장치로 이용되기는 했지만 에로티시즘에 집중하지 않고 연산군과 남사당패의 이야기로 풀어냈다.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와 '음란서생'은 억압된 인간 욕망을 주제로 다루면서도 노골적인 성애 장면을 줄이고 '진실한 사랑'을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

그에 비해 '미인도'와 '쌍화점'은 파격적인 정사신을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이란 주제와 잘 접목시켰다. '쌍화점'의 유하 감독은 "성 정체성이라는 장애를 두고 주인공들이 감정의 극단을 오가는 멜로드라마"라고 말했다. '미인도'의 전윤수 감독은 "베드신에 감동적인 요소들이 많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연출 소감을 털어놨다.

정사신 외에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도 특징이다. '스캔들'에서 복장과 가구 등의 장식미를 십분 살려냈던 것처럼 '미인도'에서는 신윤복의 그림,'쌍화점'에서는 화려한 궁궐 내부 모습과 복장 등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영화평론가 황영미씨는 "최근 사극에 등장하는 성애장면들이 역사성이나 상징성은 부족하지만 1980년대 에로 사극에 비해 품격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라며 "이 때문에 대중성을 확보하는 한 방편인 선정성이 관객들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