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아무도 투자은행(IB)이나 파생금융상품 업무를 맡으려 하지 않을 겁니다. "최근 단행된 은행 임원 인사에 대해 한 은행원이 내놓은 관전평이다. IB나 파생상품 부문을 책임진 국제통들이 하루 아침에 팽당하는 광경을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는 "예대마진만으로는 살 수 없다면서 정통 영업맨보다는 국제통을 길러야 한다고 주장할 때는 언제고 이렇게 단박에 갈아치울 수 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은 이번 인사에서 IB와 파생상품 담당 부행장들을 모두 교체했다. 하나은행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태산LCD와 통화옵션상품인 키코(KIKO) 계약을 맺는 데 개입된 임원 4명을 모두 물러나게 했다. 파생상품 관련 임원들뿐 아니라 그룹 리스크관리 담당 임원도 옷을 벗어야 했고 35년 넘게 하나금융그룹에 몸담았던 윤교중 하나금융 부회장도 이 일로 퇴진하게 됐다. 키코로 5000억원 넘는 평가손실을 보고 지난 3분기에는 하나은행이 외환위기 이후 첫 적자를 내게 한 데 따른 문책 성격이다.

사람만 물갈이된 게 아니라 조직도 쪼그라들었다. 우리은행은 IB본부장을 부행장급에서 단장급으로 낮췄고 국민은행은 독립 조직이었던 IB · 해외사업그룹을 대기업그룹에 갖다 붙였다.

'IB와 해외영업만이 살 길'이라며 관련 부서를 늘리고 여기저기서 인력을 끌어오던 게 불과 1년 전 일인데 이제 모두 IB나 파생상품이라면 이가 갈린다고 아우성이다. 이 때문에 해당 부서에서 일하고 있는 은행원들은 "차라리 지점에서 주택담보대출이나 하는 게 훨씬 나을 뻔 했다"고 푸념하고 있다. 그동안 은행의 신성장동력으로 기대됐던 분야에서 잘 나가던 인재들이 갑자기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돼 버린 셈이다.

은행들도 할 말은 있다. 조직에 손실을 입힌 책임을 누군가는 져야 하고 당장의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장기투자에 속하는 IB나 해외영업은 뒷전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국제통들이 은행 문을 나서고 IB 인력들이 일선 지점으로 돌아간다면 국내 은행들은 10년 후에도 여전히 주택담보대출이나 하는 천수답식 영업을 반복하고 있을 게 자명하다.